
긴장으로 온 몸은 뻣뻣하고, 아까부터 심장은 박동에 약진을 가하고 있다. 웨트슈트 안으로 흘러드는 물이 차갑다. 곧 수압은 온 몸을 내리누르고 온 몸에 착용한 SCUBA 역시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다. 가라앉아가며 수없이 부비동의 이퀄라이즈를 시도해도 잘 되지 않아 답답함이 침식해온다. 그렇지 않아도 잘 보이지 않는 눈에 파장이 긴 빛마저 줄어들어 시계가 새파랗게 물들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제까지 겪어왔던 어떤 세계와도 다른 정경이다. 그렇다- 나는 여기서,
-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이번 여름방학 기간 중에 AOW를 취득하자고 마음먹은 이후, 신경은 많이 쓰고 있었지만 일주일에 고작 한 번 가보는 일정에 DVD나 시험은 사실 지루한 것도 사실이었다. 언젠가는 확실히 제한수역 다이빙을 해 보겠지만 그것이 언제인지 오락가락하던 차에 바로 1,2단원퀴즈가 끝나고 제한수역 다이빙을 하게 될 줄은 몰랐더랬다. 그것을 기다리는 일주일은 꽤나 길었다.
마치 전역날 기다리는 병사처럼 언젠가 오긴 오겠지만 언제 올 지 알 수도 없고 오락가락하기만 한 그 날만 일하며 손꼽아 기다리다가, 일주일이 지난 그 다음주 화요일 드디어 센터에서 SCUBA를 챙기고 잠실 다이빙풀로 가게 되었다.

처음 압력평형에 약간 고생을 하게 된 이후로는 비교적 손쉽게 물 속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들어가본 물속 세계는 - 아니 이전까지 잠수를 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 호흡이 가능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완전히 새로웠다. 수영장 바닥에 내리쬐는 햇빛이 자아내는 파문과 레귤레이터를 빠져나가는 기포. TV나 사진으로 보았다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체험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 적어도 뇌리에 박힌 이 첫 잠수의 기억이 평생에 잊지 못할 기억이 되리라는 사실은 자명했다. 또한 누구나 그렇게 소감을 대답한다고 하지.
맨 처음 압력평형을 시도 할 때 귀에서 와드득 빠드득 하는 소리가 나서 좀 걱정했는데 이후로는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손도 안 대고 압력평형을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사실 아직도 한없이 느리고 힘들지만 곧 수심이 바뀔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정도.

그 다음주차 잠수 때에는 미네소타에서 온 친구 Johnathan Walberg 군과 함께 다이빙했다. 그런데 정말 깜짝 놀랐던 것이, 우리들이 맨 처음 입수했을 때 별별 고생을 다 했던것에 비해 존 군은 우리들이 교육용으로 보던 DVD를 함께 흥미롭게 보고 강사님께 몇 번인가 주의사항이나 다이빙 사인에 대해 숙지를 받은 뒤 바로 자이언트 스트라이드로 입수하더니만 손도 대지 않고 이퀄라이즈를 하며 빠르게 수영장 바닥으로 잠수하는 것이었다. 말로는 다이빙 처음 해본다고 하는데, 정말일까? 그 역시 미네소타로 돌아가면 반드시 OW 이상 따오겠다고 벼르더라마는.
그가 말하기를, 미네소타의 주도 州都- 세인트폴과 미니애폴리스중 미니애폴리스는 '천의 호수를 가진 도시' 라는 뜻을 가진 옛 지명에서 온 이름이라고 한다. 그가 다이버 라이센스를 취득하고 싶다는 데 대해 내가 미네소타에는 바다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 핀잔을 주자 존은 자못 당당하게, 그리고 물러섬 없이 그렇게 말했다.
비록 그가 온 곳에 바다는 없지만, 저 먼 옛날 바이킹의 피를 받았던 스칸디나비안들이 이주해온 곳이고, 바다만큼이나 넓은 레이크 슈페리어를 비롯해서 만여개에 이르는 호수가 있는 곳이라고. 언제든 그가 다이빙하고 싶으면 다이빙할 수 있고 물에 갈 수 있는 곳이라고 하더라.

하여간 그런 자부심 만큼이나 그는 이미 2주차 다이빙을 마쳐가는 우리 못지않게 능숙하게 잠수했다. 오죽하면 우스갯소리로 강사님 역시 그가 다른 PADI 지부에서 정탐 온 마스터 다이버가 아닐까 하는 이야기도 했고. 그가 후에 미네소타로 돌아간다면 누구보다도 멋진 다이버가 되어 라이센스를 취득하고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훗날 다시 만날 때에는 둘 다 제대로 된 다이버 라이센스를 취득하여 제주도에서 만나기를 기약했다.

이런저런 다이버 사인들이나 SCUBA 장비의 사용법을 숙지하는것도 재미있지만 역시 가장 즐거운 것은 물 속에서 둥둥 떠돌아다니며 유영하는 것과 이렇게 장난감 던지고 놀기. 물 밖과 물 속이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사물이 보이는지, 밀도는 어떤지. 그리고 몸을어떻게 기동해야 하는지 편하게 이해할 수 있어서 좋더라.

나는 사촌형이 이번 여름에 확정적으로 따두자고 해서 하긴 했지만, 의외로 사촌형이 이렇게 재밌게 재촉해가면서 할 정도로 흥미를 느끼고 있다고는 상상도 못 했다. 사촌형이랑 항상 붙어다닌지는 상당히 오래 되었지만 나는 형이 이렇게 무언가 새로운 것을 파고 탐구하며, 또한 이렇게 재미있게 여기는 것을 처음 보는 것 같다. 올해 들어서 형으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는 것 같아.
동갑내기 사촌 형이 미래를 향해 성장해가는 만큼 나도 크고 있는거겠지?

이런 식으로 2주차에 이른 다이빙을 마치고, 8월 17일 해양실습을 나가기 전에 제한수역 실습을 복습용으로 한 번 더, 그리고 다음달 중순에 가는 3박 4일의 해양실습에서 있을 9번의 다이빙. 나는 지금 이 모든 것들이 정말로 기대가 된다. 그 곳에 가면 물이 있고,그 물 속 세계를 아는 다이버들이 있고. 우리가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는 것을 도와줄 마스터와 형제가 있다. 정말 기대되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 AOW를 취득한 이후에도 좋은 취미이자 기능이 되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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