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에 일하는 것이 힘들다기보다는, 정확히 낮에 일하고 밤에 자다가 밤에 일하고 낮에 자는 식으로 강제로 리듬을 바꾸는 것이 힘든 것이다. 이것은 이 반대도 마찬가지라서, 간신히 낮에 자고 밤에 일할 수 있는 몸으로 리듬을 고쳐놓으면 얼마 가지 않아서 또 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 패턴으로 바꿔야 되는데 이게 괴롭지 않을 수 없다.
시프트 교대 때 딱 28시간 쉬어봤지만 몸의 생활패턴을 바꾸기 위해 강제로 자지 못하고 쉬는 것을 쉰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칩 코팅 설비 가동 이래 단 하루도 잔업을 면제받거나 한 적이 없이 하루 13시간의 막노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계속해서 일기가 뜸하고 써봤자 뜬구름 잡는 이야기나 쓰고 있는데 결국 잔업이 내 일기 다 쳐먹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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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간이 얼마 안 되는 시간이나마 남으면 주로 아가씨 만나러 간다던가... 그런데 정말 쓸 게 없긴 하다. 어쩌다 여가가 남아봤자 아가씨랑 밥이나 차 마시고 놀았다. 아니면 그냥 남는시간에 잠만 쳐 잤다는 스토리밖에는 쓸 게 없으니 더더욱 소홀해지고 있다. 일하면서 생각한 거라던가 쓸 것은 많지만 그러기엔 퇴근했을 때의 내 몸 상태가 너무 피곤하다.
9월 들어서는 진짜로 죽음의 물량 강행군을 계속 소화하고 있다. 이는 나 뿐만이 아니라 같은 팀의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지만 이제 교육이 끝나 독립한 지 한 달도 안 되는 햇병아리가 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이란 것이 뻔하니 내게는 더더욱 버겁다. 눈물 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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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일인 W/B, 통칭 와이어 본딩은 반도체의 꽃이라고 불리는 기술이다. 하지만 나는 Au와이어 본딩을 하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트랜지스터 칩과 리드프레임을 연결하는 알루미늄 와이어 본딩... 그리고 지금 이 월급 받으며 이 일을 해봤자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기술을 배울 생각으로 온 것도 아닌 내게 더더욱 테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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