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고 많은 날 중에서 단 오늘은, 진짜 오늘만은 너무 잔업을 하고싶지 않았다. 아무리 지난 주에 실컷 쉬었다고 해도 엊그제부터 조금씩생기기 시작한 피로가 누적되면서 머리는 빙빙 돌고 정신은 오락가락하는 와중에 잔업을 하라고 하니 진짜 미칠 지경. 내일 잔업할테니까 제발 오늘은 빼 달라고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진짜 이건 아닌데, 병역만 아니라면 내가 이러는게 아닌데 - 하는 생각이 일하는 내내 빙빙 머리속을 맴돌고 속은 조금이라도 설비들 다 때려부수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끓어올랐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그저 하라는 대로 풀이 죽어 윙윙 돌아가는 설비들과 싸우고 있을 뿐인 나 자신... 그나마 좀 설비 넉넉하게 보던 외국인들이 조금씩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내게 있어 08년부터 10년까지 이어지는 요 3년간은 얼마 길지 않은 내 생에 있어 가장 괴롭고 가장 최악이었던 날들로 기억될 것이다.
내게 고교 3년을 생각해보자면 그렇게 반짝거리고 멋지게 보내던 때가 또 없었다고 기억하는데 나름대로 그 시절에는 힘든 점도 있었겠지. 하지만 똑같은 거진 3년인데도 이 3년간은 파멸로 치닫는 기억밖에 없었다는게 차이라면 차이랄까. 그 사이에 끼었던 대학교 1년간은 사실 아무것도 모르던 때였던 것 같다. 진짜 이 짓만 끝나면 뭔가 어떻게 될 것 같은데. 무엇이든 다 해결되고 내가 닿기 위해서라면 다 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날이 오긴 올까.
...
기대와 다른 모습이었어도 언제나 내가 바랐던 날은 반드시 돌아왔다. 그 사실마저 잊어버린 것은 아니지만 그 사실이 현재 진행형일때는 늘 까마득히 와 닿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지금 나는 오늘 일기에서, 앞으로 특례가 끝나고. 지금 내가 벌어둔 미래에 대한 여유를 향해서 미래 내 모습의 사과와 고마움에 대한 인사를 요구한다.
언제인지는 몰라도 이 '내'가 특례가 끝난 시점에서 이 일기를 읽게 된다면 지금의 나를 결코 잊지 말라. 이 내가 지금 이 시절에 피땀흘려 얻은 미래에 대한 가치와 능력에 고마워할 줄 알라. 이렇게 힘든 시절도 있었기에 내가 미래 속에서 계속 공부할 수 있음을 고맙게 생각하길 바란다.
잊지 말라. 나는 지금 이 때의 내가 있기에 성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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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깨닫는 것은. 아무리 현재가 시궁창 같아도 화려했던 과거보다는 낫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시궁창같은 미래라도 그렇지 않은 오늘보다는 낫다. 적어도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는 아주 조금씩이지만 그만큼이라도 더 성장한 나일테니까. 지금 나는 이러한 단순한 사실을 내일이 될 수록 특례가 하루하루 줄어든다는 사실에서 깨닫고 있지만 지금 이렇게 일하면서 깨닫는 사실은 특례 이후의 내가 보다 돈오에 근접하게 되는 실마리가 되게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부디 잊지 말라. 내가 지금 사는 미래가 시궁창 같아도 내일은 아주 조금씩이라도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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