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바이크를 처음 타기 전에 나는 아메리칸을 엔듀로보다 더 좋아했었다. 낮고, 길고, 무겁고 두꺼운 것이 딱 사나이답다는 느낌이잖아. 국산 저배기량을 가지고 이미지 운운하기도 그렇지만 이건 장르를 놓고 이야기하는거니까, 결국 타보고 나에게는 아메리칸이나 레이서 레플리카보다는 가볍고 튼튼하고 배기량이 작은 오프로드가 훨씬 맞는다는 것을 알게되었지. 무엇보다도 바이크의 어떤 장르보다도 야생마라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부천에 와서 교통편도 불편하고 내가 아는 건 북부역과 회사를 왔다갔다하는 시내버스 두세개 라인밖에 없었으니까... 편한 기동성이 필요했던 나는 시간도 없는 주제에 또 움찔움찔 여기저기를 뒤적거리기 시작했고 결국 질러버렸다. 97년식 쥐색 마그마, 비싸진 않지만 그렇다고 싸지도 않은 가격으로 샀다. 그래도 중고가격이 일정한 바이크라 나중에 되팔때도 비슷하게 팔겠지. 아침에 일이 끝나자마자 신설동까지 가서 이 녀석을 인수하고 부천까지 타고 내려왔다.
고교시절 내가 탔던 T-ReX를 인수해서 타기 전까지 내 드림바이크였던 이 마그마. 우리나라에서 90년대 초부터 내내 있었던 저배기량 아메리칸 논쟁을 한번에 잠재웠던 바이크인데 실제 출시년식은 97년, 98년밖에 없고 후에 커스텀 베타버전인 99년식 소량이 있긴 하지만 아직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것을 보면 대단히 인기있었던 차량임에는 분명하다.

친구들 마그마를 몇 번인가 빌려 타보고 느낀 점은 [대단히 무겁다] 는 점. 배기량도 똑같은 주제에 건조중량 112kg인 RX와는 달리 건조중량 153kg. 리터급 뺨치는 무지막지한 무게를 자랑한다. Rx처럼 힘으로 우겨서 컨트롤이 안 되고 반응이 한번씩 느리니 타는 내내 답답한 마음도 조금씩 들고. 역시 기동성 따질 거면 그냥 스쿠터를 살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뭐 다시 환불하거나 바로 되팔거나 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좀 적응되면 나아질거라는 생각도 하고... 사실 이거 여기서 오래는 못 탈거다. 바이크 탈 시즌은 아무리 늦게 잡아도 10월이면 끝나는데 그 이후로는 도로도 얼고 타이어도 돌타이어 되어버려서 타기 엔간치 춥고 힘든게 아니니까. 그래서 추석 전후해서 휴무가 생기면 [추석때 쉴 생각같은건 도저히 못 하겠고] 익산으로 돌아갈 때 이 녀석을 타고 내려가려고 한다. 길이 막힐 땐 아주 조금이지만 바이크가 더 빠른것도 있고,
내려가서 일단 아버지 드리려고 한다. 저배기량이나마 항상 아버진 아메리칸 스타일 타고싶어하셨는데... 지금은 트럭 말고 아버지 차도 없어서 불편하실테고, 추석까지 맡아뒀다가 아버지 드려야지. 그리고 언젠가 특례가 끝나는 날이 오면, 아버지도 좀 더 자리가 잡히시면 둘이 타고 이 나라 어느곳이든.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곳 어느곳이든 함께 떠나볼테다.
by. Sterlet.
사실 오늘 아가씨 만나기로 했는데
이거 인수건때문에 아가씨 못 만났다. 그 점에 관해선 피눈물 난다.
그보다 이거 아가씨가 읽으면 나 맞아죽을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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