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무제한 제공같은 것에 약한 편이긴 한데 나무그늘의 무제한 빵은 그저 버터를 다 발라 먹을 정도만 가져와서 남김없이 먹는다. 식빵과 바게트 기준으로 두 세 조각 정도. 최근 시간을 죽이거나 노트북으로 군대 간 친구 대신 블로그 포스팅을 해 주기에는 민토보다 나무그늘이 더 싸게먹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여기 자주 와서 그냥 이냥저냥 시간을 때우고 오곤 하는 것이다. 조용히 차 마시며 책 읽기에는 좋다.
점심으로 2000원짜리 편의점 도시락 하나 먹고 4-5천원 하는 나무그늘 차 마시고 있는다는 사실에 내가 굉장한 된장남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지만.... 어...음... 생각해보니 난 된장남 맞는 것 같긴 해. 근데 생각해보면 난 커피는 [못 마시는거지만] 안 마시기도 하고 차와 빵이 리필되는 장점때문에 자주 나무그늘에 앉아있는건데 굳이 그렇게까지 생각하는건 자격지심같기도 하고.
그래도 나 이전에 술값에 돈 쳐들이던거 생각하면 뭐... 바에서 칵테일이나 보드카 청하면 비슷하거나 더 비싼 돈이 잔마다 휙휙 날아갔잖아. 그거 생각하면 최근에 들이기 시작한 차 마시는 취미도 썩 나쁘지는 않구나 싶어. 술마시고 위장 걱정하거나 하기보다는 좀 더 시간을 즐긴다는 실감이 들어서. 술 마시면서 시간 죽이는 것도 괜찮긴 하지만 술과는 다른 향기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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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주 마시는 차는 케모마일, 캐모마일이라고도 하는 카모마일 차. 개망초 비슷하게 나는 작고 덧없는 꽃을 모아다 말려서 차로 마시는 것이다. 국화를 닮은 [실제로 국화과다] 그 작은 꽃이 박하 비슷하기도 하고 사과 비슷하기도 한 산뜻한 향기를 차에서 내내 풍기는데 이 향기가 참으로 강해서 찻집을 나선 뒤에도 내 혀와 코, 그리고 인상에 계속 박혀있는 것이다.
이 작고 덧없고, 향기마저 덧없을 망정 강렬한 느낌을 가진 꽃의 꽃말은 '고난속의 힘' 추운 날을 견디며 햇볕 아래 피어나는 덧없어도 강인한 꽃에 붙여진 꽃말이다. 그와 동시에 이렇게 힘든 일상을 버텨내는 최근의 나에게도 또한 더없이 어울리는 강인한 향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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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여서 우연히 생긴 며칠간의 휴가도 끝.
내일부터 다시 지옥의 시작이다.
아직 뇌리에 남은 카모마일 향의 인상이 날 버티게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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