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1일 화요일

길고 까맣고 딱딱한 것을 샀다 - Kar 98k




지난달부터 사자 사자 벼르고만 있던 것을 드디어 간신히 사버렸다. 20세기의 피와 포화로 얼룩진 역사의 일익을 훌륭히 담당했으며 아직까지도 그 역사를 자랑하는 지나간 세월의 볼트액션 라이플. Mauser Kar 98k. 2차대전 당시 도이치군 보병의 개인화기다. 맨 처음에 이 녀석이 나왔을 때만 해도 갖고싶긴 했지만 비싼 가격 - 뭐 물론 마루신같은 일제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싸지만 - 때문에 엄두를 못 내다가 최근 나온 퇴직금으로 약간 여유가 생긴 터에 사버렸다. 

막상 사서 좀 들고 만져보니 이거 꽤나 무겁고 길다. 소프트건 제원상의 무게 자체로는 내가 훈련소에서 죽어라고 안고 뛰고 구르던 M16A1보다 가벼운 2.5kg 정도지만 길이가 훨씬 길어서 더 무겁게 느껴진다. 실총 무게는 3kg를 훌쩍 넘어가는데 얼마나 무거울지 상상도 안 간다... 게다가 이거 길어서 불편하다. [라이플 답다] 하는 느낌은 제대로 받지만 지향사격같은 것은 불편하다. 다만 정조준 사격때에는 그만큼의 편의를 보장한다. 

하지만 단순히 대전시 독일군의 소총이었다거나 진짜 총답게 생겼다거나 이런 이유로 내가 이걸 샀을리는 없지. 더구나 어느쪽이냐면 난 Kar98보다 M1 개런드 소총을 더 좋아한다구... 뭐 실총일 때 이야기지만. 하지만 난 토이스타에서 개런드 소총을 내 줬어도 난 이 녀석을 샀을거야.


이유는 단순해. 실총이랑 거의 비슷한 노리쇠뭉치... 뭐 실총이라고는 해도 내가 쏴본 실총은 훈련소에서 써본 식스틴이 전부지만, 어쨌거나 다른 에어건처럼 노리쇠가 플라스틱제의 실린더/챔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묵직한 풀 메탈 그대로... 아니 그렇다고 해서 뭐 진짜 노리쇠뭉치랑 비슷한 것이 들어갔다는 게 이유의 전부냐면 또 그건 아니지.


이거 봐, 볼트를 옆으로 돌려 당기면 철컥- 하는 소리가 나면서 이렇게 노리쇠뭉치가 후퇴고정돼. 이 소리, 소리만 들어도 진짜 감동이야... 훈련소에서 철컥철컥하고 돌아가며 부딪치던 노리쇠 소리랑 똑같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라구. 탄창 우겨넣는 소리같은 것은 플라스틱제 에어소프트건의 탄창으로도 비슷하게 만들 수 있지만 이렇게 노리쇠가 후퇴/전진할때마다 나는 철컥거리는 소리는 절대 흉내낼 수 없어. 눈물나올 정도로 그리운 소리. 



윤활유 냄새도 풀풀... 아 그리운 냄새다... 이거 손에 묻히고 오래 있으면 손가락 피부가 아려와서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노리쇠와 약실, 그리고 이 탄알 쉘에도 윤활유가 잔뜩 묻어 있어서 훈련소 냄새가 잔뜩 났다. 하여간 삽탄은 이런 모양이다. 쉘이 5발 붙어잇는 클립을 약실 위의 홈에 끼우고 그대로 우두둑 내려 밀면 5발이 한꺼번에 삽탄된다... 근데 이거 내가 하면 그런건지 원래 그런건지 내가 하면 겁나 안 들어가고 뻑뻑하고. 그대로 탄피가 같이 딸려 내려가서 걸리는 일이 있다보니 난 그냥 쉘 하나하나 끼워서 삽탄하는게 편하더라.

소리도 소리지만 이게 결정적이다. 탄알집이 있는 에어소프트건을 사도 결국 그 속에는 그저 BB탄만 들어갈 뿐이고 총알 하나하나 짤깍거리며 채우고 하는 맛이 전혀 없잖아. 이건 실총처럼 클립으로 우두둑 우겨넣을수도 있고 한 발 한 발 재어 넣을수도 있고. 정말 재미있어.


다 들어가면 클립을 치우고 노리쇠를 전진시켜 쉘 하나를 약실로 밀어넣고 탄환 일발장전 완료. 개런드는 클립째로 들어가는데... 더구나 개런드는 8발, Kar98은 5발... 사실 전쟁 중 독일군과 미군의 개인화기 화력차이는 총에 삽탄되는 총알의 개수보다 반자동/수동식의 차이가 더 크지만 이런 적게 장전되는 탄알 수도 이유 중 하나이지 않았을까 싶다. 뭐 더 잘 맞았다고는 하지만 전쟁에서는 결국 화력과 쪽수로 승부가 결정되니까 독일군 입장에서는 정말 안타까웠겠지.

탄막은 파워 DAZE. 


조준은 이런 느낌. 이거 어디서 많이 본거다 싶더니 AK의 탄젠트식 가늠자와 거의 유사하다... 랄까 사실 AK가 Kar98의 가늠자를 참고한거지만, 하지만 모양이 좀 더 패여 있어서 AK의 그것보다 위화감이 든다. 가늠쇠울도 폐쇄형이고. 개런드보다는 훨씬 정밀사격이 강해보이는 면모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탄젠트식 가늠자는 사격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느낌이라... 



격발 후 볼트를 열고 노리쇠를 힘껏 당겨 약실에 남아있는 빈 탄피를 빼낸다. 반드시 [힘껏], 실총은 안 그런다는데 에어소프트건인 이 녀석의 경우는 탄피를 쳐 주는 부품이 약해서인지 이처럼 멋지게 탄피가 날아가 구르는 것을 보기가 힘들다. 클립 하나를 비우면 반 정도는 이처럼 제대로 약실에서 날아가지만 나머지 반 정도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약실에 남아있거나 걸리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 ㄱ-... 그렇더라도 실총이 가진 로망, 노리쇠를 후퇴시켜 탄피를 구르게 하는 비주얼만으로도 혹해서 싸지도 않은 이 Kar 98을 산 밀리터리 매니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단순한 기능에 다들 목 매는구나 싶지만 그만큼 탄창도 없는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해서 다들 비싼 가격을 무릅쓰고 사는게 아닐까.

생각해보면 나도 그래서 산 거잖아 ㄱ-;; 

by. Sterlet.

몇 번인가 이야기한 기억이 있는데 
전 밀리터리 오타쿠 같은게 아닙니다. 매니아도 아닙니다.
그냥 신기해서 산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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