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1일 화요일

시작은 신화로 일컬어진다 - AVATAR를 보고 오다.




3D영화라는 것이 사실 생소한 장르는 아니다. 내가 이걸 본 가장 오래 된 기억은 거의 20년쯤 전에 테마파크나 엑스포 과학공원에서 봤던 체감영화나 3D 영화에서도 단순히 화면에서 뭔가 튀어나와 보이는 것 정도는 실감나게 보여줬던 것으로 기억하니까. 다만 단순히 그런 흥미와 호기심 위주의 3D 영화 - 우와 화면에서 물건이 튀어나오네 - 에서 벗어나 3D 영화도 일반 영화처럼 즐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데 가장 큰 의의가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타이타닉 이래로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감독의 이름은 항상 전설로 남아있었다. 먼 옛날부터의 구상이 첨단 기술과 결합하여 스크린으로 돌아온 영화 '아바타'. 단순히 그래픽이 멋지고 실감난다는 영화는 얼마든지 있다. 흥미는 가질 법 하되 아직 일반적이지 않은 장르를 일반적으로 만든 그 연출이 이후 영화들이 표현에 도전할 방향을 새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멋진 영화다.

3D 효과를 이용해서 사람 놀래키거나 [봐라 이게 3D다] 라는 시도는 주로 놀이공원에서나 시도할만한 연출인데 여기서도 머그컵 골프신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보여주기는 한다. 맨 처음에는 마냥 신기하기만 한 3D 효과도 점점 좀 더 감정의 이입과 현실감을 더하는 영화의 도구적 장치로 쓰일 뿐이지 그게 전부가 되지는 않는다. 3D 효과가 아니더라도 영화 자체로서 훌륭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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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스토리에 관해서는 정말 이야기 할 것이 없다. 나쁜 지구인들이 외계행성을 침략하고 그곳의 외계인들에게 동화된 주인공이 나쁜 지구인들을 몰아낸다는 이야기라 네타고 자시고고 없는 순도 100% 권선징악 스토리. 웃기는 점은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인간인데 인간들이 신나게 얻어터지고 쫒겨나는 스토리를 보며 즐거워하는 것도 인간들이라는 거겠지. 인간이 인간을 까는 영화들 보면 사람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그야 나만 해도 지구인의 함선들이 신나게 깨지는 장면에서 통쾌함을 느끼기까지 했으니... 외계인의 침략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영화나 소설들이 많은데 이번에는 지구인들이 다른 문명보다 압도적인 과학기술을 가지고 침략을 시도한다는 점은 신선하긴 하되 참신할 것까지는 없지만 신나게 얻어터지고 오는 소재라는게 또 유쾌한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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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제이크 설리를 연기한 샘 워싱턴은 이전에 터미네이터 4의 마커스 역으로 나와서 인상깊게 본 적이 있었는데 이번 아바타에서 또 다른 전혀 새로운 주인공을 참 멋지게 연기했던 것 같다. 보통 어떤 배우를 알게 되거나 하면 그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된 작품의 이미지로 인식하게 되는데 이번 아바타의 영향으로 기계인간이었던 전작의 모습에서 다리를 잃은 해병대이자 나비족의 토루크 막토인 아바타의 모습으로 샘 워싱턴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또 인상깊은 캐릭터가 있었다면 헬기조종사 트루디 차콘을 멋지게 연기한 미쉘 로드리게즈. 트렌드답게 예쁜 얼굴도 아니고 몸매가 가는 것도 아닌데 그녀가 연기하는 여전사의 모습은 얼마나 멋지고 섹시하게 와닿았는지. 맨 처음에는 선글라스에 껌을 짝짝 씹으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꼭 스타크래프트의 드랍쉽 파일럿같다는 이미지를 주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비중이 커지게 된다. "니만 무기 있는거 아니거든?" 하는 대사를 내뱉는 째졌지만 매서운 눈매의 그녀가 얼마나 간지폭발났는지 모르겠다.

그 밖에도 각 부족의 사람들이나 지구인측을 연기한 사람들도 더없이 그 역에 맞는 사람들이 연기했다는 느낌이다. 그 역에 맞는 사람들이 연기한건지 그 사람들이 연기했기에 그 역이 맞게 보였는지는 모르지만 전형적인 악당군인을 연기한 스티븐 랭이나 과학자 시고니 위버 역시 그들이기에 더없이 어울리는 배역을 맡았다고 생각한다. 

09년 후반부 들어 본 영화중에서는 최고였고 09년 전체를 통틀어서도 이만큼 대단한 영화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이런 역작을 09년의 마지막에라도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당분간은 이 영화의 기억으로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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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잔업을 빠질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뜬금없이 잔업을 빠지라고 해서 오늘 하루는 OT를 쉬고 보고싶던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사실 내가 일 제일 못해서 물량을 못 채우기에 빠지라고 한 거지만 욕먹을 망정 쉰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덕분에 보고싶은 영화도 봤고 최근 부족해진 옷도 샀고, 너무 뜨거워져 곤란해진 랩탑용의 쿨링패드나 먹고싶던 삼양라면 클래식 컵라면도 실컷 사왔다. 이번달은 아마 더 이상 잔업을 빠지기 어렵겠지만 버틸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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