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1일 화요일

야마하 DX7, 세계 최초의 디지털 신시사이저 이야기.



신시사이저, 사실 요즘 들어서는 다들 그냥 밴드의 피아노 정도로만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말야... 원래 신시사이저의 의의는 기타나 베이스가 내지 않는 음색부분을 메꿔주는 그런게 아니라 음색을 기록하고 불러오며, 합성하고 왜곡하여 현존하지 않는 새로운 악기소리를 만들어내는 기기로서의 의의가 더 크다고 생각해. 

그런 의미에서 신시사이저의 역사는 컴퓨터의 발전이나 공학적인 발상에 궤를 같이해왔어. 무그 박사가 진공관 회로를 이용하여 현대적인 신시사이저를 만든 이래 많은 공학자들과 음악가들이 일렉트로니카를 위시한 재미있는 장르와 음색을 탄생시켜왔고, 시대는 맨 처음의 진공관식에서 트랜지스터식, 집적회로, 고밀도 집적회로, 초고밀도 집적회로식을 넘어 지금은 컴퓨터 내의 소프트웨어로 신시사이저의 음색과 합성, 왜곡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어. 그리고 그 역사의 물결 사이에는 바로 세계 최초의 디지털 신시사이저, 야마하의 DX7이 있었다구. 


진공관식은 너무 크고 무겁고 수명이 짧은데다 열이 비상히 많이 났고, 반도체식은 아날로그의 감성을 따라가지 못한다던 시대, 야마하의 젊은 음향공학자들은 컴퓨터기술에 기반하여 완전 디지털식으로 모든 음색을 데이터화하고 입력과 출력, 제어와 판단이 가능한 음원에 대한 개발 가능성을 보고 즉시 연구에 착수했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음악가들에게 다가갈 이 신시사이저는 DX시리즈라 이름붙여졌고, 당시로서는 아직 생소했지만 곧 사운드 인터페이스의 표준이 될 MIDI 기술을 세계 최초로 탑재했어. 그리고 바로 양산을 시작했는데 때는 바야흐로 1983년, 서브트랙티브 신시사이저가 주종인 시대에 야마하는 지금까지의 어떤 신시사이저와 닮지 않았으면서도 그 모두를 재현해낼 수 있는 신시사이저를 세상에 탄생시켰어. 숱한 악기를 만들어온 음악세계 굴지의 기업 야마하의 위상이 전자악기로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증명하는 순간이었어. 

당시 수천만원대를 호가하는 고가의 악기였던 신시사이저는 값싸고 재미있는 디지털 신스시대가 열림으로써 보다 다양한 곳, 여러 곳에 보급될 수 있는 여지가 열렸어. 지금으로서는 노브 하나 없이 쓰기 짜증나는 외관을 하고 있지만 당시 기준으로서도 아주 가지고 놀기 즐거운 신스로서의 본연에 충실했던데다 가격까지 저렴했던 DX7은 출시되자마자 수만대를 팔아치우며 당당히 전자악기 시장에서 지금의 야마하의 위상을 만들었고 기존의 감성에 치중하던 무그나 오버하임 등의 기존 신스회사를 죄다 굴복시켰지. 

그 이전에도 야마하는 피아노와 관악기를 비롯한 악기와 바이크, A/V기기, 운동기구나 제트스키 등을 만들던 희대의 문어발 기업으로서 유명했지만 이렇게 뜬금없이 툭 튀어나온 녀석이 앞으로 모든 신시사이저의 모습이 자신처럼 변모할 것임을 강요하던 예는 없었어. 그것도 어떤 강제력이 아니라 순수한 기술력과 혁신뿐만으로 말야. 


지금으로서는 참 구질구질해보일수도 있는 흑색 찻빛깔의 바디와 고리타분한 롬 카트리지 방식. 기껏 주변기기 입출력용으로 플로피디스크를 연결해도 2HD는 인식도 못 하지 720kb짜리 2DD로만 작성해야 하고... MIDI입출력이 DAW의 표준방식 중 하나가 되었기에 망정이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얘도 숱한 역사의 그저 그런 신시사이저로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었어.

1983년, 출시한지 벌써 30년째가 되어가는 이런 오래된 악기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밴드와 아티스트들이 아끼며 애용하고 있어. 대표적으로 엘튼 존과 스티비 원더, 엔야, 퀸이 그랬고 스트라토바리우스의 키보디스트 젠스도 지금까지 이 DX7 초기버전을 사용한다고 해. 기존의 어쿠스틱 악기의 위상에 도전하는 전자악기가 이젠 빈티지를 가지고 이렇게 사랑받는 것을 보면 과연 30년 전 출시된 이 디지털 신스의 위상과 그 의의를 실감할 수 있어. 


이제는 시대의 대세가 컴퓨터를 이용한 가상악기로 넘어갔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젠 이 DX시리즈 특유의 오래된 게임음악같은 FM 음원을 잊지 못해서 가상악기로라도 이렇게 DX7을 컴퓨터 내에서 구현해서 쓰는 유저도 많아. 오래된 모델이니만큼 이제 더 이상 DX같은 신스는 생산되지도 않고 아무도 찾지 않겠지만 FM음원의 뿅뿅거리는 따스한 소리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는 한. 이처럼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악기는 컴퓨터 속에서 언제든 다시 깨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실제로도 DX7은 컴퓨터에서 재현되는걸로 끝나지 않았거든. 


사랑받는 악기였던 만큼 세상에는 아직도 DX7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관련된 굿즈를 소비하고 있어. DX7을 기념하는 옷은 물론이고 DX7 특유의 검은색과 코발트 그린의 컬러링으로 모든 것을 떡칠하는 사람도 있고 실제로도 야마하의 많은 장비들이나 기기에도 디자인적 모티베이션을 제공했지. 어찌 보면 흑색에 코발트 그린은 단순한 색 조합이지만 이러한 소리를 넘어 눈으로 보이는 부분에도 DX7은 정말 많은 영감이 되었던거야. 

그리고 그렇게 DX7이 발매된 이후 25년째, 기존에 전혀 없던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고 당당히 거기에 대해 표준으로 군림했던 또 다른 야마하의 자식이 현재는 그 위상을 계승하고 있어. 악기의 소리를 재현했던 기계에서 이제는 사람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컴퓨터의 영혼으로, 모두에게 사랑받는 보컬로이드라는 이름으로. 


얘 이야기는 발매날부터 지금까지도 내가 하도 많이 이야기했으니까 그만둘게. 허나 알 사람은 다 알듯이 DX7의 이 컬러링과 맨 처음 기술력으로 도전했던 자신감이 후대의 보컬로이드들에게 영향을 준 것이지 절대 그 반대는 아니라는거야. 그리고 그런 만큼 사랑받는 기계였던 DX7의 딸들이 이제 세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기대해보는것도 재미있지 않겠어. 

...

하여간. 맨 윗사진이 그래 내가 이번에 구한 DX7인데 지금까지 모은 내공을 모으고 모아서 결국 기스나 크랙 하나 없고 건반 변색도 없는 깔끔한 DX7을 구해내고야 말았어. 생산은 많이 되었어도 30년이나 된 빈티지드 악기라서 구하기야 쉽지만 깨끗한 것은 진짜 박물관 가지 않으면 못 구할 수준이었는데 초기 매뉴얼이랑 롬 카트리지, 가죽케이스까지 완벽하게 구비된 세트가 있어서 상당히 비쌌음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머금고 가져왔어. 

뭐~ 사실 그래도 난 전자악기는 EWI밖에 못 하기에 내가 가지고 있어도 의미가 없으니까 아마 다음달에 놀러올 미드군이 가져가겠지만 그래도 친구가 연주하는 FM음원의 젊음을 들어볼 수 있다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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