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굴러다니던 고등어캔에 보드카 두어잔 비우고선 휘갈기듯 쓰는 이 일기가 어느 새 특례 종료 100일 전을 알린다. 내일부터는 전역 두 자리수에 접어들어 매일매일 전역의 그 날이 가까워짐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찜찜한 부분이 있다면 그만큼 시간은 이전보다 더 흐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게 될 것이라는 것. 이미 병역을 마친 주변의 말을 들어보면 점점 그것이 더해져서 전역 50일 이하가 되면 하루가 천년같아지는 기현상을 겪게 될 것이라고 하더라마는...
하여간 그렇게 해서 어느 새 병역 종료까지 앞으로 100일간이다. 맨 처음 전역 카운터를 시작했을 때의 1/3도 안 남은 정도의 기간이라는 뜻이다. 처음 300일 카운터를 시작했을 때에는 내 쓰린 속이 완벽히 파멸 직전이라 오로지 버티자는 기도만 남아 있었고 200일 카운터 때는 300일 때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감상을 썼었다. 하지만 200일 때만 하더라도 100일쯤 남을 때가 되면 뭔가 달라져도 확실히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 하지만,
....별로 달라진 것은 없어.
사실 업무량이 혹독하고 과중하기로는 그 여느 때, 300일이나 200일이 남았던 그런 때 보다도 지금이 가장 끔찍하다. 마음대로 잡을 수 있는 휴무는 이번달에 없고 강제휴무만 월초에 하루 써버린 상태. 앞으로 남은 4월 한달동안은 잔업 제외 그딴 거 없고 오로지 2교대로 20일 가량. 어떻게 봐도 완벽히 사망 내지는 최종보스전 플래그인데 이 상황에서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게 당연하잖아.
늘 상황은 내가 익숙해진만큼 혹독해지는데 앞으로 남은 그 100일가량이 나의 인내심과 각 상황에 대한 익숙해진 정도를 테스트하는 기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일이 힘들어지기로는 내가 숙달된 만큼 계속 힘들어질 것이다. 그것이 내가 나가는 그 날까지 1/100만큼 조금씩 조금씩. 시나브로 종래에는 내가 미쳐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 날이 오기는 올 것이다.
...
나보다 병역을 훨씬 늦게 시작한 친구들도 이미 거진 전역했거나 전역할 때가 다 되어 간다. 나는 늘 이 모양이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끝날 날이 오리라 믿는다. 결국 내가 상상했던것과는 달리 전역일이 가까워졌다고 해서 뭔가를 더 잘 할 수 있게 되었다거나 긍정적이 되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결국 이전과 감상이 다르지 않다는 뜻이라 늘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내 시각이 바뀌지는 않았다는 뜻이지만, 적어도 내가 현 상황을 확실히 인내해야 되는 데 대한 모티베이션은 박힌 것이 아닐까. 결국 특례가 끝나는 그 날을 더욱 애타게 기다리게 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이렇게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지 않은가.
솔직히 나는 지금 전역일이 하루 남았든 일주일 남았든 한 달 남았든, 그런 사람들이 별로 부럽지 않다. 지금 와서 느낀 거지만 사실 병역이 현재진행형인 사람은 사실 전부 똑같은 거였다. 부러운 대상은 오직 하나. 이미 전역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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