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1일 화요일

병역 할 동안 묵힌 리큐르를 걸러내다 + 새 술.




체로 깨끗이 걸러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팔각 속껍질이 조금 섞여서 밑에 가라앉아있다. 지금은 예쁜 석류석 빛을 띄고 있다. 더 이상의 변색 없이 그대로 가는거다. 사실 전부 걸러내고 맛을 봤을 때는 향이 너무 지독하게 강하고 색도 저런 흑장미색이 아니라 거의 무슨한약색에 가까운 똥색 액체였기에 35%짜리 주정으로 조금씩 희석시켰다.

문제가 있다면 희석시키면서 조금씩 맛을 봐 가면서 희석시키는데 딱 맞다고 생각할 때쯤 병을 봉하고 일어서 머리가 팽 하고 돌더라. 맛본다는게 너무 많이 먹어버렸어;;! 하여간 그래서 760cc정도 나온 원액 주정으로 희석시켜서 지금은 1200cc 정도. 이젠 향도 빛깔도 딱 예쁘게 되었다. 아직은 병에만 넣고 즐겁게 바라만 보고 있지만 언젠가 괜찮은 술자리에서 따야지.

맨 처음 병역특례를 시작하면서 바로 이 팔각주를 담갔는데, 결국 병역특례 종료 후 조금 따라 마셔본 팔각주에서는 시원하게 울었을 때의 청량감과도 비슷한 느낌이 났다. 그러고보니 난 중학교를 졸업한 이래, 결국 10년 가까이 울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렇게 괴로웠을때에도 내가 흘리지 못했던 눈물을 기껏 술 한잔이 대신 울어주는구나. 


건더기들 향이 강해서 재탕해도 될 것 같았다. 일단 원래 담갔던 용기는 깨끗이 씻고 침전물도 다 빼냈다. 설탕 조금, 35%짜리 주정, 이번에는 헛개나무와 계피, 수삼도 서너뿌리 넣어보았다. 사진에는 없지만 정향이랑 생강도 조금. 생각해보니까 완전히 열 올라 죽는 배치구나... 내가 먹으면 완전 극약이겠어. 준비한 뒤에 재료들을 전부 집어넣고 완전히 잠길 정도로 주정을 붓고 봉했다. 


어마무지하게 일반적인 가정집 약주 모양이 되었다. 팔각 색깔이 올라온다면 반 년쯤 지나서는 좀 더 연한 호박빛깔의 향기 좋은 리큐르가 되겠지. 먹을 수 있는 시기는 보통 병을 봉한지 반 년 정도 뒤지만 아마 이번에도 최소 1년. 길면 3년 정도 더 묵힐 것 같다. 그렇게 그 3년이 지나고, 내 미래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가닥과 확정이 잡혔을 때 다시 따 보고 지난 3년간 내 인생이 어떤 기분이었고 어떤 맛이었는지 반성해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

한 잔 마시면 감기 잘 안 걸리는 팔각주를 완성했어요.

11월 전후로, 겨울 직전에 함께들 나눠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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