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1일 화요일

오타쿠같은 염색체 프레젠테이션 후기.




그래서, 지난주에 했던 이 어처구니없고 오타쿠스럽기 이를 데 없는 이 발표. 결과만 놓고 말하자면 꽤 호평이었다. 기본적으로 내가 PPT에 애니메이션이나 줄글을 쓰는 법은 거의 없고, 중심 키워드랑 이미지, 혹은 수치만 줄줄 나열한 뒤에 나머지는 전부 내가 쏟아내는 발표로 커버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화면에서 어떤 흥미를 이끌어내는 것이 참 힘들었기 때문에, 최근 경쟁하는 친구들의 발표 스킬이나 수단이 많이 성장한 지금 이전의 방식을 고수해서는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동영상 편집이나 플래쉬같은 저작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것도 아니고, 이것은 같이 발표를 하는 사촌형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이미 할 수 있는 선, 결과적으로 가장 기본적인 PPT 실력만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보아야 했다. 결국 근간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발표 자료 자체를 좀 더 정제하고 발표시에 그나마 어그로를 덜 끌며, 화면이 확실히 사람들의 눈을 잡아끌만한 소재나 수단을 사용했는가 어떤가였는데...

...문제는 우리가 선택한 수단이라는게 키야마 선생님이라던가 마키세 크리스라던가 하카세라는 것이었는데... 화려하게 만드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당장 좀 특이하고 눈길을 끌 만하게 만든다는 것이 이런 수단 말고는 딱히 뾰족한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 발표의 특징이, 기본적으로 정의부터 짚고 넘어간다. 과학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제시되는 이론과, 그 이론에서 나오거나 예측될 수 있는 모델의 데이터이다. 둘 중 하나라도 결여되면 과학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어려운 점이 있다. 또한 이론이나 데이터가 나와있더라도 신뢰성에 대해 의심을 해 봐야 할 때가 있곤 해서 최근에는 좀 피곤한 개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의이다. 정리가 아니라 정의. 


백과사전식으로 따져서, 정의개념 이후로 정리를 하는 편인데 어떤 법칙이나 생물에 대해 설명할 때, 나는 꼭 역사나 발견자 소개를 대강 하는 편이다. 이전에 조류학에서 각 사이클 설명할때도 그랬고. 지난학기때 Simplified Bible of CRS 만들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지. 기본적으로 정의를 뒷받침하는 내용인만큼 비중을 빡세게 두는 편이다. 


사실 이 페이지는 의미가 별로 없는 편인데, 컨텐츠 페이지가 기껏 두 장 넘어가긴 했어도 저 두 장 설명하느라 시간상으로는 이미 10분 가차이 지나갔기 때문에 잠깐 그냥 웃겨보자고 만든 페이지. 사실 전혀 웃긴 내용은 아니었는데 참고했던 래리 고닉의 페이지에서 쓸만한 부분이 있어서 복붙했다. 뭐 별 문제는 없다. 그냥 쓰잘데없는 질문을 덧붙이면 이거 아닐까 하는거지. 


염색체 구조와 히스톤 단백질에 관해서는 이미 청중들도 잘 안다고 생각해서 빠르게 넘겼다. 사실 고등학교때 이미 다들 생물학에서 배우고 오는 내용이잖아. 다만 히스톤 단백질에 관해서는 그냥 그런게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는 친구들이 많을거라 생각되어 히스톤 단백질 부분에서 꼬인 마쉬멜로의 예를 들어서 한번 더 언급은 하고 통과. 

여기에서는 꼬마 키야마 선생님을 써먹었다[....] 


염색사의 디옥시리보 핵산이 어떻게 결합하고 나선구조를 이루는지, 왓슨과 크릭이 발견하게 된 이 장대한 이야기는 사실 내가 이것만 가지고 설명하기도 하루 해가 지는 내용이라 간단히 히스톤 단백질에 감겨있다는 식으로만 이야기하고 넘어갔다. 이거 설명하려면 진짜 밑도 끝도 없는데다 나중에 우리 말고도 DNA에 대해 발표를 할 친구들의 소재를 뺏는 일이 되거든;;


형태적으로 보는 염색체와 왜 염색체란 말이 되었는지에 대해, 어원이나 트리비아를 짤막하게 언급하고 넘어갔다. 이번 발표는 시간 자유 무제한이긴 했지만 이미 이 시점부터 나랑 사촌형 둘 발표만으로 벌써 20분 잡아먹고 있었기에, 이미 레벨이 발표를 넘어 수업이 되어가고 있었다...[...] 실제로 난 발표를 할 때 교수님 수업 스타일을 상당히 많이 참고하는 편이구. 


염색체 이수성 관련해서는 누구나 잘 알고, 또한 유명한 다운증후군 관련 예시를 이야기했는데 다운증후군이야 유명한 만큼 누구나, 더구나 전공자들인 우리들은 잘 알고 있는거니까 구체적인 현상보다는 다운증후군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편견 같은 것을 좀 다루었다. 학문적으로 이런 내용을 배우다 보면 염색체 관련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해 편견을 갖기도 쉽거든. 


키야마 선생님을 쫓아내고 하카세나 크리스를 꿔다논 보릿자루마냥 화면 구석에 써먹기 시작했다. 상염색체 이수성에 대한 예시는 이미 들었으니 성염색체 이수성인 터너, 클라인펠터 증후군에 대해서 조금 다루었다. 그리고 그것이 왜 생겨나는지, 그리고 나이별로 어떻게 이러한 성염색체 이수성 증후군이 나타나기 쉬운지도. 

덧붙여 이 때 발표한 내용이 우리 바로 뒤 발표조 내용을 조금 잡아먹어버렸는데 다행히 우리가 설명했던 테마와 그들이 준비한 테마가 약간 차이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예시로 사람을 적극적으로 써먹었지만 그들은 작물이나 어류 중심으로 설명했거든; 


초자성과 초웅성 설명에는 일상에서 나왔던 귀여운 하카세를 써먹었다. 사실 별 의미도 없고 갖다놓을 이유 없이 그냥 시선끌기용 이미지긴 했지만 의외로 귀엽다고 좋아하는 반응이 나와서 놀랐다. 하기야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보는 사람들 눈에는 그냥 귀여워 보일지도. 


뭐 초웅성이나 초자성 역시 유명하게 알려진 염색체 이상 돌연변이니까, 그냥 편견이나 데이터 관련해서 대강 이야기하고 넘어갔다. 사실 이런 염색체 이상요인을 가진 사람들을 어떤 장애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2차대전 시대에 그랬듯이 우생학은 상당히 위험한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초웅성 남성이라고 해서 전부 폭력적인 것은 아니며 초자성 여성이라고 해서 꼭 전부 여성스러울리는 없잖아... 뭐 성향이란게 조금 차이가 있긴 하지만 초웅성 남성의 경우 대부분은 별 이상 없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으며 초자성 여성도 어차피 X염색체 특성상 한 개 빼고는 전부 불활성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겉으로 보아서는 아무도 알 수 없어. 


염색체 자체 이상인 중복, 결실, 역위, 전좌에 대해 대강 개념은 설명하고... 이 부분 마저도 이후 발표자들과 겹칠만한 부분이 있어서 이런 돌연변이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만 언급하고 넘어갔다. 다만 이것은 예시를 드는 것이 좋다고 판단되어 염색체 결실에 관해, 5번 염색체 말단이 결손되는 묘성 증후군에 관해서 약간 언급은 해 두긴 했다. 

그리고 여기서 유명한 명언 한 마디, 염색체 이상 증후군 환자는 당신의 가족이나 혹은 친구일 수 있습니다[....] 인터넷 짤방으로도, 일반적인 대사로도 최근 꽤나 유명해진 대사지. 비록 영어로 써 놓긴 했어도 알 사람은 다 알아들을듯... 내 영어실력이란게 좀 그러니까 문법이나 이상한 부분이 있어도 그건 너무 뭐라고 하지 말아줘ㅠㅠ 한국사람이 한국어를 잘 하니 영어를 잘 할리가 없잖니.


실은 자료참고란에 '엔젤하이로 위키' 이렇게 써놓으려다 이건 아닌 것 같아서 그냥 솔직하게 위키 제외한 나머지 참고서적이랑 사이트를 적어놨다.... 인데 엔하위키 안 적어도 하필이면 이미지 출처에 데비안 아트나 픽시브, 심지어 야짤긁기 사이트로 유명한 겔부루까지 적어놨잖아. 출처를 표시하긴 해도 이런 식으로 표시한 놈은 아마 나 말고 없을거야. 


마지막은 적절하게 적절한 마키세 크리스. 지금까지 사용한 이미지는 여기저기, 특히 겔부루에서 'labcoat' 라고 검색해보면 나오게 되어있다. 사실 해양대답게 물고기나 뭐 이런 이미지를 쓸까 했는데 캐릭터처럼 데포르메되고, 가공이 쉬운 이미지는 없어서 제일 만만히 생물학과처럼 보이게 하는 랩코트를 입은 사람의 이미지라면 웬만해선 다 긁어온듯한 기분이 들어. 

...

결론만 말하자면 의외로 호평, 항상 딱딱하게 하던 내 발표에서 벗어나 좀 귀여운 느낌으로 해 본건 나쁘지는 않았다. 이게 끝나고 몇 명인가 내가 애니를 보는지, 혹은 뭘 보고 하는지에 대해서 물어봤는데 난 당연히 죄다 노코멘트.... 뭐 딱히 일코나 뭐 그런 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대답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가치도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입다물었을 뿐이야.

다만 좀 발표시간이 길어진건 교수님이 싫어하셨다... 내용 관련해서는 부족함이 없었던 듯. 항상 느끼는건데 나는 데이터는 많이 뽑아오고, 그걸 남들에게 설명할 정도로 정제하는 것도 잘 되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항상 요약이 부족하고 장황해서 문제가 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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