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회지의 존재의의는 마리사와, 앨리스와, 파츄리 3명의 마법사 이야기인데 실제로 가장 많은 머리수와 페이지 수를 자랑하는건 치르노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애시당초 목적은 평범돋는 마리사 개그물로 18페이지정도 가볍게 그려보자는 생각이었는데 주체없이 불어나기 시작한 페이지는 50페이지에 육박할 지경이 되어버렸고 당초 예상했던 장르는 이젠 백합물이 되었다가 전투 액션이 되었다가 그냥 깔끔한 뒤죽박죽 잡탕물이 되어버렸다...
재미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거야 이걸 그리는 우리들 감상인데다 하도 읽었던거 또 읽고 읽었던거 또 읽고 해서 이젠 아무래도 좋고 알 바 아닌 상황에 되어버렸다. 오죽하면 대본도 거의 다 외우고 페이지 번호도 반쯤 외울 상황. 처음 회지니까 긴장이 넘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아직 나오지도 않은 회지를 다른사람들 보여줄 수 잇는 건 아니니 똥줄이 탈 수밖에.

22일부터 시작된 작업, 현재 서클에서는 펜선작업 공정이 막바지에 치닫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칸을 치고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펜선을 넣어서 마감하는 단순한 과정이지만 어디까지나 말이야 쉽지 실제로 하고 있노라면 가만히 앉아서 완전 좀이 쑤실때까지 움직이지도 못하고 이것저것 긁적대기만 하는 작업인데 뭐가 재밌겠냐. 내가 컷을 분할하고 그려서 인물 위치를 잡아주면 회장은 여기에 밑바탕 스케치를 하고 서기가 펜선을 입힌다.
이번 회지 가장 주력 그림체는 회장의 그것으로 낙찰되어 현재 원고지 위에 러프스케치를 담당하고 있지만 스케치만 하고 펜선부터는 막내인 아람냥이 하고 있다. 가늘고 균일한 선만 쓰는 아람냥 그림에서 표현력은 회장보다 조금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멤버들 중 가장 빠른 손을 가지고 있어서 빠르게 그어낼 수 있는 강점을 버리기가 어렵지.
현재 회장은 어제 이틀간 밤을 새며 전체 50p 회지 중 30페이지 정도를 완성한 뒤 점심나절 내내 뻐드러 자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일어나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랬다곤 해도 다시 얼마 안 가 메신저로 인사랑 현황만 간략히 주고받은 뒤 다시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기 위한 잠에 빠져든 듯. 그렇게 회장이 필사적으로 밤을 새가며 확보한 버퍼 스케치를 지금은 아람냥이 착실히 선을 덧붙여 완성하고 있지만 하루이틀 빠지거나 지각한 타격이 커서 회장보다 손이 빨라야 할 펜선담당의 작업진척이 난항을 겪는 중. 원래 예상대로라면 이미 금요일쯤 아람이가 회장의 작업속도를 따라잡아야 했지만 회장이 막판에 잠도 안 자고 그린 덕택에
나는 엊그제부터 컷 분할과 자선 작업을 마친 뒤 계속 친구들의 작업을 지켜보며 삽입되는 로고나 배경 같은 것을 긁고 있다. 펜선작업에 나도 참가할까 싶은 생각도 있는데 두껍고 굵기변화가 풍부한 내 선은 아람이의 미려하고 균일한 선과는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같은 그림체에 같은 회지인데도 다들 다른 사람이 그렸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 차마 그러기가 힘들다.

어제부터 오늘까지는 주말을 맞아 인천에서 놀러온 김시발군이 회지작업시의 표현에 대해 조언하며 회장의 스케치를 보강하고 몇몇 부분은 손수 그려주기까지 했다. 순전히 팀을 위한 내 요청에 아무 대가도 기대도 없는 조력에 무한한 경의를. 진짜 시발이에겐 회지 그냥 줘도 아까울 게 전혀 없다. 아니 같이 그린 멤버인데 주지 않을 수 없지.
이처럼 회장은, 그리고 우리들은 많은 친구들과 함께 그들이 서로서로에게 베푸는 도움을 받아서 각자의 생애 첫 동인지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일개 서클의 구성원들로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에 걸맞게 하루하루 성장해나가고 있다. 예전까지 해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하고 있고 예전에 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서로 몰랐던 것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며 우리들의 그림은 각자의 장점을 조금씩 닮아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우여곡절 끝에 6월까지는 다사다난했던 회장의 스케치와 펜선작업이 끝나고 7월부터는 CG와 이펙트, 편집에 돌입하게 된다. 다른 누구보다 총무노릇하는 내가 가장 바빠질 땓. 그 때가 되면 회장은 표지 등을 그릴 것 같은데 어떨지 모르겠다. 사실 미리 조금씩 그려뒀어야 하는데 지금 그리는건 너무 여력이 없기도 하고. 슬슬 조금씩 서클 소개 블로그 같은 것을 만드는 데에도 착수해야 하는데 원고만 생각하면 걱정이 태산이다. 마감까지 보름 가량 남았다 치고 그 짧은 기간 내에 내가 50페이지나 되는 엄청난 분량의 흑백원고에 완벽히 먹칠과 톤질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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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피폐해져간다. 다행히 바쁘니까 마음이 그럴 여력은 없지만 지금 숨어자거나 얻어먹거나 하며 낮에만 모두가 있는 작업실로 돌아와서 지내다 보니 잘 씻거나 먹기가 힘들어 신체적으로 피폐해지는 것이다. 그래도 내일만 버티면 고단했던 펜선 작업은 끝나고 서울로 돌아갈 수 있다. 정말 힘든 사투였다. 하루만 더 나도 그들도 버틸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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