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에서는 한참 옛날에 개봉했다고 한다. 올해 2월즈음에 개봉했다고 하니까 불법 다운로드판이든 뭐든 이미 볼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다 봤겠지. 나 역시 원작 소설로는 현재 나온 권수까지 전부 읽었으니까 이미 내용은 다 알고 있었고, 이러한 매니악한 애니 특성상 아무리 개봉일이더라도 이런걸 극장까지 보러 올 사람은 없겠지 - 라고 생각했는데.
글쎄, 개봉일의 저녁 8시 영화를 보러 갔더니 신나게 미어 터지는중이었다[...]
무슨 착오였는지 가운데 보기 좋은 위치에 한 자리가 남이있기에 주저없이 예매를 하고 보러갔다. 내용 자체는 원작과 거의 동일하며 보러 온 사람들도 아마 그 내용을 알고 보러 왔다는 사실을 공기에서 맡을 수 있었다. 가령 쿈이 곤란해질 시점 쯤이면 아직 곤란할 대사는 나오지도 않았지만 영화관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터진다던가. 그래. 가령 정상판 미쿠루에게 쿈이 가슴에 점 운운하며 달려들 때라던가 할 때 말이지.
나 역시 이미 하루히의 소실편을 오래전에 다 읽었기에 내용은 다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에서 눈을 못 떼고 계속 보게 만드는 그 연출이나 작화는 과연 쿄토 애니메이션다웠다. 영화 전 제작사 시그널부터 카도카와 쇼텐, 란티스, 쿄애니 등이 지나갔는데 여기저기서 오오 쿄애니 오오오 하는 탄식이 나오더라.
일본 애니메이션 답게 중요한 장면장면이나 연출에서는 광원 효과를 아낌없이 화려하게 사용하거나 작화에 엄청나게 공을 들인 모습을볼 수 있었다. 난 그걸 신카이 마코토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았을 때 느꼈지만. 보통 애니메이션은 컴퓨터나 DVD로 보더라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주의이며 이런 식의 극장판 애니 역시 호소다 마모루나 지브리 사단 작품이 아닌 이상에야 굳이 영화관까지 찾아가서 보는편이 아니기에 그래봤자 애니메이션이겠지 했는데 3시간 가까이 걸리는 전개가 전혀 지루하지도 않았고 한 장 한 장 지나가는 프레임에 엄청 공을 들였다는 것이 느껴져서 시종일관 눈을 떼지 못하고 재미있게 보았다.
작화도 작화지만 역시 계절적인 표현이나 심상도 표현의 주 대상이었다. 원작에서도 계절언급은 지적 허영이 가득한 문체로 신나게풀어나가지만 그것을 추운 겨울의 입김이나 거리의 모습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진짜 스크린을 보는 내가 추위를 느낄 정도로 잘 표현했다. 더구나 이제 막 추워지기 시작한 요즈음의 날씨를 떠올리는 장치가 되어 옷깃을 여미게 하더라.
내용과 결말까지 아는 애니었는 표현만 보고 그런 것이 가능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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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관 안이 딱 봐도 이건 '이 쪽' 계열이다 싶은 사람으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여기에다 세열수류탄 서너알 까 넣으면 우리나라 오덕들 전부 전멸하겠구나 싶을 정도로 극장판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을 보러 온 사람들은 정말이지 많았다.
다만 다 좋은데 특정 장면에서 대사를 따라한다거나 중얼중얼 하는 것은 좀 삼가주었으면 한다. 특히 내 앞쪽 자리에서 코이즈미의 오버액션 손동작이나 쿈이 머리짚고있는거 주변에서 보일 정도로 과도하게 따라하는 사람 뭐냐. 오프닝 역시 TV판의 오프닝과 동일하기에 다들 누구나 노래도 가사도 알고 있는데 따라부르는건 관둬라. 너 말고도 다들 알고 있고 다들 외우고 있는 노래다. 딴에는 다른사람들 피해 안 준다고 작게 중얼중얼하며 부르고는 있는데 그거도 거슬리게 들리기는 마찬가지거든. 하루히 공연을 왔다면야 떼창을 하든 뭔 짓을 하든 상관 안 하는데 여긴 영화관이야.
...
소실 시작 전 다른 광고나 다른 영화 예고편을 틀어주는데. 중간에 해리포터 영화광고가 나왔거든. 무슨 연기를 훅 헤치고 수염 성성한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걸 본 바로 내 뒷자리의 누군가가 이렇게 뇌까렸다.
"와 운잔이다."
....너 누구니? 동덕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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