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뜬금없이 사나이 - 요리 이야기 참 잘 나간다. 엊그제 썼던 사나이 브라우니 이야기 이후 와인젤리 이야기도 나름 흥해서 그냥 시리즈로 밀고 갈 생각. 조만간에 사나이 요리 카테고리에서 내 자작요리랑 맛집 포스팅 이야기를 분리해야겠다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번엔 참 흔한 푸딩이다.
사실 이건 로타모가 다쳤다는데 문병갈때 돈도 없어서 뭐 사갈 도리도 없고 복잡한 걸 만들기도 어렵고 해서 간단하게 달고 부드러운거만들 거 없나 찾아보다가 순전히 냉장고에서 나온 재료만 가지고 만든 것이다. 저번의 젤라틴이 남아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어... 뭐 재료비가 비싼 편도 아니고 어려운 디저트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만들어가는 편이 정성이 듬뿍 담기잖아.

일단 캐러멜 시럽을 만들어. 푸딩들 보면 보통 머리는 갈색인데 몸은 희거나 노랗잖아? 이때 위의 갈색은 타서 그런게 아니라 캐러멜 시럽이 뭉쳐 굳어서 그래. 내가 만든 것처럼 용기채로 떠먹는 시럽일 경우 아래가 갈색이 되겠지. 어차피 뒤집고 톡톡 때리면 원래대로 떨어져 나오니까 별 상관 없을지 몰라... 다만 내가 만든건 점성이 좀 못 미더워서 모양이 그렇게 예쁘게 되지는 않을 것 같더라. 딜레마지. 부드러우면 모양이 부서지기 쉽고 딱딱하면 모양은 예쁜데 Aㅏ...식감...

캐러멜 시럽의 정석은 물반 설탕 반 해서 냄비에서 조려 만드는거지만 내가 만드는 양은 어차피 소량이고 존나 귀찮다는 이유에서 그냥전자렌지 행. 전자렌지에 설탕 두숫갈이랑 물 한숫갈 넣은 그릇을 집어넣고 몇번 휘적휘적 저어준 뒤에 전자렌지에 넣고 1분만 칭 하면단순한 설탕물이 캐러멜 시럽이 되어있어. 이때 설탕의 농도에 따라 단순한 사탕이 되어버리느냐 시럽이 되느냐의 차이가 있으므로 주의 =ㅂ=;; 난 너무 오랜만에 했다가 초반에는 뽑기를 만들어버려서 대단히 곤란했어.
[실은 걍 짙은 물엿을 사용해도 눈치채는 사람 없다?]
조려낸 캐러멜 시럽을 푸딩을 만드려는 용기 밑바닥에 얇게 깔아준 뒤 그대로 냉장고에 식혀서 굳혀. 적당히 굳게 놔두지 않고 바로 위에 푸딩용액을 부어버린다면 용액이랑 시럽이랑 다 섞여버려서 그냥 곤죽이 되어버리므로 반드시 냉장고에 식힐 것.


우유 400cc 정도를 끓지 않을 정도로 살짝만 데우면서 연유 한주먹 투입. 어차피 시럽도 들어가겠다 설탕만 넣기는 싫어서 연유를 넣어봤어. 부드러우면서도 적당히 끈기있는 식감이 돼. 그리고 바닐라 한 수저와 미리 물에 불려둔 젤라틴도 5g 정도만. 사실 젤라틴을 완전히 넣지 않고 푸딩을 만드는 방법도 있는데 그러면 푸딩이 너무 딱딱해져서 먹을 때 기분이 좀 나빠져. 젤라틴을 넣고 물의 양을 많게 할수록 부드러운 푸딩이 돼. 환자 갖다주는 용으로는 확실히 그게 더 낫지 않겠어.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는데 이 때 계란물도 만들어놓아야 해. 사진대로의 분량이라면 계란 2-3알 정도. 젤라틴이 안 들어간다면 3알 정도는 확실히 까야 해. 나는 그냥 두 알 정도 거품기로 열심히 휘저었어. 너무 세게 휘젓다 보면거품이 상당히 많이 날텐데 그거 그대로 사용하면 푸딩에 구멍이 잔뜩 생겨서 박지성 피부처럼 되어버리니까 주의. 아까 살짝 데워서 젤라틴을 녹여둔 우유가 손가락을 넣어도 될 정도의 온도라면 풀어둔 계란을 넣고 다시 잘 혼합되도록 섞어줘.

용기에 채운 뒤 냉장고 1도 칸에 집어넣고 이대로 하룻밤 그대로 내비둬. 이렇게 두면서 기포를 빼는건데 만약 이 과정을 생략하고 푸딩을 만들면 정말이지 울퉁불퉁 달분화구처럼 되어버리니까 반드시 필요한 공정이야. 일식의 부드러운 연두부같은 계란찜을 만들 때에도 가장 중요한 공정이지. 이대로 하룻밤 두면 보이지는 않아도 기포가 될 공기방울이 다 빠져.

정석은 푸딩틀에 붓고 예열한 오븐에 쪄내는 거지만, 누차 말하지만 내가 자주 주방을 빌리는 준네 집에는 오븐이 없어. 게다가 틀도 지퍼락이라 아무리 내열플라스틱 용기라고는 해도 오븐의 고온이라면 녹아버릴거야;;;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하라고. 어차피 계란물은 60도 이상 올라가면 굳기 시작하니까 미리 물을 끓여둔 냄비에 찜망과 행주를 깔고 그 속에 쓰리지지 않게 푸딩틀을 넣어서 푸딩을 찌기 시작해. 보통 30분 정도 쪄내면 부드럽게 잘 굳어.
전체적으로 30분정도 약한불로 쪄내면 나중에 젓가락으로 찔러봐도 묻어나오는 것 없이 부드러운 푸딩의 형상으로 변해. 맨 처음에어머니께 이걸 배웠을 때에는 푸딩이 아예 물이 되어버리거나 혹은 너무 딱딱하게 되어버려서 그 중용을 지키는 데 굉장히 힘들었어. 지금도 사실 잘 조절하는 편은 아니라서 푸딩이 연두부보다는 순두부에 가깝게 되었다는 느낌이긴 한데 환자가 떠먹을 용도로는 그 정도의 식감이 적당하지 않겠어?
하룻밤 내버려둬서 기포를 빼내도 찜기에 찌는 방식으로는 필연적으로 기포가 생기기 마련이야. 계란찜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편해.사실 푸딩도 일종의 설탕으로 간한 푸딩같은 것이니까 어쩔 수는 없지만 하루 기포 빼둔 상태라면 그래도 용서할 수 있는 수준.

30분 쪄낸 뒤라면 아직 좀 부드러울텐데 찬물에 중탕해서 식히든가 냉동실에 잠깐 넣어서 급격히 식히면 먹기 좋을 정도로 굳게 되어있어. 계란은 온도가 고온일수록 딱딱해지고 첨가한 젤라틴은 식힐수록 딱딱해지니 재미있지. 계란으로 뼈대를 만들고 젤라틴으로 사이를 굳힌다는 느낌이야. 하여간 완성하면 딱 눈으로 보기에도 푸딩이다 싶은 질감이 돼.
사진은 미리 다른 곳에서 만들어온 브라우니에 코코넛 마렬 부순것을 묻힌 브라우니와 곁들여 찍은 사진. 딱 이 세트대로 아픈 로타모군을 위해 챙겨갔어. 브라우니는 작은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서 용기에 넣은 채, 푸딩은 냉동실에서 살짝 살얼음 생길때까지 식힌 채 뚜껑을 막고 챙겨갔지.
바닐라향 섞인 달콤한 맛이, 도저히 내 취향에는 안 맞는 혀가 녹아버릴 것 같은 감미지만 그래도 이걸 좋아하는 사람은 꽤 많아. 왜소녀의 로망이라고 하잖아. 미친 척 하고 양동이 한가득 푸딩을 만들어서 머리를 쳐박고 질려버릴때까지 먹는 것은 로망이라고. 근데 난 소녀가 아니라 소년이잖아...............Aㅏ............. 진짜 난 안될거야.

하여간 그렇게 만든 푸딩들 중에서 제일 예쁜 건 아픈 로타모 갖다주었고 - 양이 많기에 아직 집에도 많이 남아서 친구들 부모님과 나누어 먹었어. 얜 어제 수술 끝나고 이제는 아무 팔도 못 움직이고 누워있는데 아까 연락해서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는것을 확인했어. 별로 간식정도인 푸딩이지만 그래도 먹고 기운차려서 무사히 나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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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워졌다. 하늘이 이렇게 청명한데도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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