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와인젤리라고는 하는데 과즙이나 와인을 한 번은 끓인 뒤에 응고시켜야되니까 실상은 포도젤리랑 크게 다를바는 없는 젤리야. 알코올의 끓는점은 60도 내외고 한 번 포도즙을 끓였다가 만드는데 알코올이 남아있을리가 없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인젤리는 포도젤리 비슷한 식감과 맛을 가지면서도 남아있는 발효 포도즙 특유의 부드러움이 남아있어.
그래, 술맛은 안 나지만 와인젤리는 정말로 어른스러운 간식이야.
이전에 잼을 만들고 젤라틴이 좀 많이 남았길래 냉장고를 뒤져보니까 포도주스가 있는거야. 그런데 아무래도 젤리를 만들기에는 조금 모자란 양이라서 별 수 없이 마트에 갔지. 뭘로 젤리를 만들까 두근두근하다가 주스 사오는 김에 값싼 테이블 와인도 한 병 사와서 만들게 되었어.


일단 테이블 와인이랑 젤라틴을 준비. 난 가루젤라틴 15g 정도를 사용했는데 판젤라틴도 많이 써. 얇싹한 판젤라틴이면 대여섯장정도면 된다고 해. 일단 와인 500cc 정도를 냄비에 넣고 불을 가해서 천천히 끓여. 생각해보니까 저 웍팬 브라우니 만들때도 썼고, 내가 준네 집에서 뭔가 만드는 데에 쓴다면 끓임도 하고 볶거나 지지기도 하고 찌기도 하고 진짜 별별짓을 다 하는데 중화팬이 이래서 좋구나. 팬 하나 가지고 별 걸 다 할 수 있어. 아무래도 크기는 좀 작은 26cm짜리인데 조만간에 33cm짜리 진짜 중화팬을 사려고.
와인은 진로 하우스와인 ㅡㅡ 이야. 사실 포도원액은 절반에 나머지는 주정으로 맛을 낸 테이블 와인이지만 뭐 어때. 와인 닭찜처럼 와인이 비쌀수록 맛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고 화이트와인도 괜찮다고는 하는데 갔던 작은 마트에는 이 정도밖에 없어서 그냥 싼거 사왔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정말 조금씩 조금씩 감질나게 가루젤라틴을 뿌리며 잘 저어줘. 숫가락에 넣어서 푹 담가버리면 수저에 젤라틴이 왕창붙어버리기도 하거든. 그러면 쓰지 못하는 부분도 많아질 뿐더러 나중에 수저를 닦아내기도 고역이야. 집기에 달라붙은 굳은 젤라틴 이거 웬만해서는 잘 안 떨어져. 미리 따뜻한 물에 조금씩 개어서 투입하면 편하지만 우리가 하는 요리래봤자 어차피 다른거 만들던 도중에 라면끓이는 생각으로 하는거니까.

가루젤라틴이 뭉친 부분이 없게 약하게 끓이며 잘 저어주다가 설탕 크게 서너스푼? 반컵 조금 안 되게 투입해. 원래 와인 속에도 가당된 상태라서 너무 많이 넣을 필요는 없어. 단맛이 거의 없는 보르도 와인이라면 설탕을 더 넣는 편이 좋고 달콤한 칠레 와인이라면 설탕을 덜 넣어도 별 상관이 없겠지. 꼭 넣을 필요는 없지만 레몬즙도 한수저 정도 넣어주면 더 산뜻해져. 우린 넣었어.
이쯤 되면 거의 완성이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젤리는 정말 디저트 치고는 쉽고도 쉬운 레시피를 가지고 있어. 질감이나 점성을 조절하고 모양을 뜨거나 하는 방법이 조금 어렵고 귀찮을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당연히 많이 하다 보면 나아지는 것이고 기본은 과즙에 젤라틴을 부어서 끓이고 틀에 부어 식혀내는 정도로 끝. 라면이랑 다를 게 없지?
젤라틴이랑 설탕을 완전히 녹여냈다면 일단 불을 내리는거야.

그리고 용기에 붓는거야. 젤리는 반 고체 상태인 콜로이드니까 결국 부드러울 때 부어놓은 틀의 모양에 따라 그 크기와 모양이 결정되는건 당연하겠지? 와인잔이나 사각 온더락, 시험관이나 여러가지 재미있는 시판되는 틀이 있지만 우리들은 무난한 제리뽀보다 조금 큰 사이즈의 크리스탈 소주잔을 택했어. 이 정도의 달콤함이면 이 정도 크기의 젤리 하나를 먹는 편이 질리지 않고 먹거든.
지금은 완전히 물 같아서 진짜 이게 굳어질지 어떨지 의심스러울거야. 걱정하지 말고 식혀둔 소주잔 가득 깔대기를 사용해서 부어둬. 흘리는 것은 주의. 젤라틴에 설탕까지 들어간거라 이거 흘리면 참 닦아내기 귀찮거든.

딱 소주잔으로 10잔 분량이더라구. 와인병이라고 해서 그렇게 많은 건 아니었구나... 그리고 저 오와 열을 맞춘 가지런한 정렬은 현재 말년병장인 미드군의 작품. 아무리 제가 개말년이라고는 해도 군인인데 이 정도는 '각'을 맞춰야 되지 않느냐면서 으르렁대며 저렇게 각을 잡더라구 ㅡㅡ;;
이대로 냉장고의 차가운 부분에 넣어서 냉각시키는거야. 영하로 떨구면 표면이 막 뜨면서 하얗게 울기 시작하니까 찬 곳에서 식히되 얼리지는 말아야 해. 아이스크림을 만드는게 아니라 젤리를 만드는거잖아. 맨 위의 사진이 냉장고에 넣어둔 사진이야. 일단 진동없는 부분에서 한 두 시간 식혀두면 금새 굳어지지만 나중에 꺼내서 쏟았을 때 모양이 망가지기 쉽거든. 보통은 이대로 하루밤 그대로 두는 편이 좋아. 우리들은 바로 먹고 가기 위해 성질급하게 한 시간만에 열었지만.

완성된 젤리는 - 아 거참 더럽게 볼품없다;; 그야 아직 냉각이 덜 되어서 소주잔 표면에 신나게 달라붙어있는 상태인데 그걸 무리하게 거꾸로 막 흔들다가 부서지며 쏟아져서 그래... 이런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급랭시키며 또한 냉각 상태를 오래 두는 것이 좋아. 우리처럼 뚜껑 없이 냉각시키면 표면이 마르기도 하니까 가급적이면 뚜껑 있는 용기로.
일단 잔에 든 상태로 떠먹는 용도로는 평범한 와인젤리 맛으로 괜찮았어. 설탕이 조금 더 들어갔나 아무래도 달아지긴 했지만 단 거좋아하는 친구들은 별 이야기 없이 잘 먹더라. 주방 빌린 준네 부모님들도 한 개씩 맛을 보시고는 잘 만들었다고 칭찬해주셨어 'ㅂ'
뭐랄까 참 만들기도 쉽고 간단한데 있어보이는 디저트라 좋아. 젤리는.
...
밴드 만돌린 주자인 로타모군이 어제 우발적으로 일어난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다.
만사 다 제쳐놓고 보러 가고 싶지만 어제부터 외근중이라 그럴 수가 없다.
부디 내가 믿는 신의 가호가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함께할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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