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마만큼이나 새까만 주제에 천사보다도 더 따스하고, 늦은 밤보다도 더 깊은 주제에 햇살보다 포근한 달콤함이 난다. 자커토어테나 티라미수, 브라우니같은 초콜렛맛 강한 디저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즐겨 쓰는 쵸코홀릭다운 표현이지. 또한 그만큼 누구나 한 번 씩은 만들어보다 실패하기도 하며 예쁘게 되었다고 기뻐하는 밥통 브라우니. 그런 의미에서 나도 도전해 본 거야. 그리고 군대 말년휴가 나온 미드군도 하는 김에 같이 만들어보았어.
사실 브라우니의 정석은 오븐에서 만드는 것이다. 원래 반죽 자체가 달콤하고 찐득하니 맛있지만 그것을 뜨겁게 20분 내지만 찌듯이 구워내서 속은 촉촉 찐득한 타르트 질감에 겉은 쫄깃한 가죽이 있는 브라우니가 된다. 그러나 오븐이 있는 집이 그리 많을리는 없고 내가 뭘 만들 때 사용하는 준네 주방에도 오븐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라서 밥통을 사용한거야.

먼저 버터와 진한 쵸코맛의 근원인 다크초코를 준비. 난 기성품의 커버춰 초콜렛을 사용했는데 이건 사실 뭘 사용해도 상관 없어. 카카오 xx% 바리에이션도 좋고 밀크초콜렛도 좋아. 사실 이건 너무나 취향의 문제지만 내가 사용했던 커버추어 역시 기본은 다크초코였고 다들 다크쵸코를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아. 달고 부드러운 맛이 좋다면 밀크쵸코. 진하고 끈적이는 것이 좋다면 다크겠지.
버터는 뭘 써도 상관은 없어. 사실 굳이 버터를 쓰지 않고 마가린이나 식용유를 써도 괜찮지만 동물성 굳기름이 어느 정도에서 녹는지 온도를 볼 필요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버터가 편해. 나같이 물중탕을 귀찮아하는 타입에게는 이 정도가 딱 좋아. 일단 비율은 버터든 마가린이든 하여간 굳기름이랑 커버춰 초콜렛을 3:1 정도로. 현재 버터가 150g 정도에 쵸코 역시 50g 정도야.
서울버터 저거 한 토막에 80g씩이니까 눈대중으로 계량하기 편해.


냄비나 밑바닥이 깊은 웍팬을 최대한 약한불로 줄인 열원에 올리고 버터를 지지면 요렇게 자글자글 녹아가. 이 때 너무 온도를 올리면 기름이 끓고 기름이 너무 세게 끓으면 나중에 녹일 커버츄어 초콜렛이 완전히 익어버리거든. 사실 버터를 녹이는 온도만 해도 상당히 높은 편이니까 버터가 다 녹았다 싶으면 바로 불을 끄고 한번 흔들어서 식혀주는것이 좋다.

버터가 완전히 녹아버리면 재빨리 불을 끄고 조금 흔든뒤에 커버춰 초콜렛을 전부 투입. 사실 초콜렛도 기름덩어리니까 원하는 양만큼 많이 넣어도 좋아. 다만 브라우니 안의 기름 비율은 맞춰야 해. 버터를 좀 줄이고 초코를 더 넣어도 좋지만 나중에 브라우니가 완성되었을때 뭉치거나 끈적해지는 경향이 생기기 쉬워.
딱 버터가 녹을 정도로만 가열하고 초콜렛을 투입하면 별로 오래지 않아 초콜렛도 완전히 다 녹아버릴거야. 딱히 내가 할 건 없고 휘휘 저어서 건더기가 없을 정도로 녹여주기만 하면 돼.

버터랑 초콜릿 해서 200g정도 양을 녹였으면 이젠 계란 두어 알 투입. 계란 한 알에 80g 내외니까 두 개면 대강 160g이네. 맨 처음 투입했던 버터 양과 거의 비슷한 양이구나. 녹은 버터에 쵸코마저 다 녹였다면 계란이 익지는 않을 온도야. 아직 따뜻하긴 하겠지만. 일단 계란 두어개를 노른자 흰자 분리 없이 톡톡 까넣고 완전히 풀어질때까지 잘 저어줘.

그리고 밀가루 왕창이랑 전분 크게 한 숫갈, 탄산수소나트륨 티스푼으로 반숫갈이랑 설탕 크게 서너숫갈정도 넣고 열심히 거품기나포크로 저어주면 돼... 라곤 해도 사실 가루 믹스쳐를 만든다는 건 상당히 귀찮은 일이니 난 기성품을 사용했어. 이런 식으로 짜잘하게 계량하기 어려우면 미리 계량되어있는 재료를 사용하는게 더 편하고 가격도 싸게 먹혀. 그래서 보통은 다들 핫케익 믹스를 사용하곤 해. 핫케익 믹스를 한 컵 크게 투입하면 위에 이야기한 건 잊어도 돼.
요새는 브레드가든이나 이런저런 베이킹 믹스쳐 메이커에서 여러가지 브라우니 믹스도 팔고 있으니까 그걸 사용하는 게 좋아. 세트로 나오는 것은 장식용 포장지나 견과류까지 전부 곁들여져 나오니까. 머리도 덜 아프고 가격까지 싸거든.

난 우유도 소주잔으로 두어잔 넣었어. 컵케익이나 이런 류의 디저트는 으레 우유를 넣어주면 부드러워지는 특징이 있어. 굳이 넣을 필요는 없고 안 넣어도 그만. 사실 처음 만들 때에는 이런 시도는 안 하는게 좋아... 라고 말하긴 하는데 사실 나도 디저트는 별로 관심도 없고 브라우니 자체도 처음 만들어보는 거거든. 그래도 지금까지 이것저것 만들어보면서 느낀게 이 정도는 허용되는 용량이지않을까 하는 요량으로 우유를 조금 넣어줬어.
하여간 그렇게 신나게 같은 방향으로 휘적휘적 젓다보면 밀가루에 글루텐이 생겨서 적당히 끈적해지거든. 저거 긁어먹으면 엄청 달콤한 초코시럽 맛이 나. 브라우니를 만들다 보면 다들 이 과정에서 한번씩은 손가락을 넣어서 찍어먹어보더라구. 반죽만으로도 머리아프게 달아;;
사진으로만 보면 꼭 짜장같다.


밥통에 기름을 바르고 반죽을 투입. 반죽이 대단히 끈기가 강하니까 닥닥 긁어서 넣어줘야 해. 사실 밥통에 기름을 바르라는 이야기는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래도 냄새 없는 식용유를 얇게 밥통에 발라주는것이 좋아.
일단 밥통은 아무래도 직접 열원이 브라우니에 닿는데 일부분이 타거나 밥통면에 점착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거든. 그렇게 되면 나중에 떼어낼 때 모양이 망가지는 경우가 허다해. 결국 기껏 만든 달콤한 브라우니를 숟가락으로 퍼먹어야 되는데 그렇게 되면 좀 슬프잖아; 난 왠만해서는 음식 모양에는 신경 안 쓰는 주의인데 그래도 기왕 할 양이면 예쁜 편이 좋지 않아.
일단 다 긁어서 밥통에 반죽을 넣었으면 뚜껑을 닫고 취사를 올려. 지능형 밥통이라면 만능찜이라던가 이런저런 요리선택기능이 있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사용한 밥통은 크기만 줩내 크고 사용방법은 간단해서 취사랑 보온밖에 없거든. 일단 취사를 한번 넣고 나면 열심히 보글보글 찌기 시작할거야. 밥통굴뚝에서 나는 김 냄새가 무지무지하게 달콤할걸. 온 집안이 진한 쵸코향으로 가득 차게 돼. 냄새만으로도 당뇨병에 걸려버릴 지경인 그런 냄새가;

일단 취사가 끝나고 보온으로 넘어가면 보통 한 번 정도 식을때를 기다렸다가 한 번 더 취사를 눌러줘. 그닥 오래 가지는 못하고 다시 스위치가 올라올텐데 약간 뜸을 들인다음에 뚜껑을 열면 저런 악마같은 것이 하나 들어있을거야. 잘못 만든것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쇠젓가락으로 두꺼운 부분을 푹 찔러봐. 젓가락을 들었을 때 아무것도 묻어나온것이 없다면 성공한거야.
아무래도 밥통 크기가 크고 브라우니 반죽은 그리 많지 않은데다 - 밥통이 오래 사용한 밥통이라 가운데만 움푹하니 올라온 구조거든. 그래서 이 브라우니. 가운데는 얇고 가장자리가 두꺼운 형태가 되었어. 아무래도 사각 주사위 모양으로 자르는 건 조금 무리가 되었네.


쟁반이나 커다란 접시에 놓고 거꾸로 하면 저렇게 밥통브라우니가 떨어질거야. 근데 보통 실패할 경우 이 단계에서 다들 브라우니를 부숴먹어서 망해... 일단 나는 밥통 크기가 너무 큰지라 맞는 접시를 찾지 못해서 일단 쟁반에 올렸어. 그리고 먹기 좋은 크기로 커팅. 아무래도 가운데가 얇으니까 사각형은 무리고 피칸타르트를 자를 때처럼 가느다란 피자마냥 돌려가며 잘랐네.
그보다 저 개량 중식도 참 오래도 쓰는구나. 기억나는게 저 중식도 가장 처음 사용했던 것이 내가 고 3때부터였던 것 같은데. 아마 친구들 BBQ 해 줄 때 닭 치기 위해서 사용했는데 지금은 가장 애용해서 사용하게 되었어. 비싼것도 아닌 가장 싸구려에다가 날맛이 좋은 것도 아닌데 하도 많이 사용해서 익숙해져버렸어. 이젠 뭘 해도 저걸 먼저 잡게 돼. 난 식도는 잘 못 쓰지만;

디저트는 만들었다고 끝이 아니라 어떻게 자르고 예쁘게 담아내고 하는가에 따른 마지막의 형태가 끝인 거라 참 귀찮아. 근데 이 집엔 슈가파우더도, 장식할만한 어떤 것도 없고. 그냥 한 조각 꺼내서 접시에 올리고 갈설탕만 조금 뿌렸어. 참 볼품없네. 원래 브라우니라는게 쵸코빵 되다 만 반죽같은 느낌이라 예쁜 디저트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아쉬워.

달콤한 디저트니까 달콤한 와인을 곁들여본거야. 나는 비록 지금 술을 마시지 못하니까 결국 미드군이랑 재현군만 신나게 마셨지만서도... 현재 롯데마트에서 할인하고 있는 리저바 레이트 하비스트 08년식. 아이스와인을 만드는 포도랑 똑같은 리슬링 포도를 사용해서 담근 와인이야. 진짜 브라우니만으로도 달콤해 죽겠는데 와인까지 달콤해서 머리아플 지경이겠다;;
저거 와인인데도 병이 좀 작아. 기본적인 와인병이 700cc 가량인데 저건 한 500cc나 될까 말까? 게다가 가격은 1.5만원 정도. 지금 롯데마트에서 반값세일하지 않았다면 가장 만만한 진판델 와인이나 콩코드 테이블 와인을 사왔을지 모르겠어. 나는 뭐 마시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지만 다들 달콤한 안주에 달콤한 와인으로 맛있게 먹었던 것 같아.
...
밥통브라우니. 초심자가 하면 으레 실패하기 쉽지만 어느정도 숙달 된 사람이 하면 너끈히 할 수 있다고 해서 두근두근하며 만들어봤는데 걱정했던것보다 훨씬 예쁘고 맛있게 되었어. 조만간 빼빼로 데이때도 솔로들의 우울한 데이를 기념하며 브라우니라도 또 만들어보려고 해.
대체 브라우니가 빼빼로랑 무슨 상관이냐고 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맨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악마같이 새까맣고 밤보다도 더 깊은 맛을 자랑하기에는 아무래도 커플보다 솔로들에게 더 어울리는 단맛이 아니겠어 ㅠㅠㅠㅠㅠㅠ 으앙 내가 이렇게 말하기는 하는데 그냥 눈물이 나네.
밥통에 브라우니를 올리면서 와인젤리도 만들었어.
술로 만들었어도 술맛은 안 나고 와인향만 남는 와인젤리.
조만간 보여줄게에.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