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성품의 파베쵸코 중량만 2kg. 아무리 널널하게 놀아가면서 했다고는 해도 카카오버터 1kg이라는 어마어마한 중량을 가루로 만들고 생크림 1000cc와 시럽과 연유를 휘젓고 전부 칼로 각을 쳐서 포장하는 작업은 장장 6시간. 진짜 어마어마한 중노동이었다. 확실한거 하나는 다음에 초콜렛을 만들 때에는 그냥 하던대로 몰드를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조금씩 할 때는 전혀 모르겠는데 이렇게 엄청난 용량으로 하자니 진짜로 뼛골이 녹아 내리는 줄 알았다.
사진은 테이크아웃 식 개별 소포장단위로 했던 쵸코 포장. 젤리컵에 연주황 투사지를 깔고 쵸코를 넣은 뒤 핸드메이드 스티커와 포크용이쑤시개를 꼽아 마무리. 납인 이후로 요새 빈티지스럽게 꾸미거나 리폼하는 것이 좋아서 많이 시도해보곤 하는데 이번에도 썩 나쁘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그 외 부스나 가져갈만한 사람에게 나눠줄 때에는 검은색 케이스와 트레이에 넣어서 배포했다. 다들 좋아해서 나도 기뻤다. 그럼 이 빌어쳐먹을 정도로 많은 파베쵸코를 어떻게 만들었느냐 하면.

환소주 전날, 저녁 9시쯤이었다. 초콜렛 블록을 놓고 커다란 칼이나 철-_-;;권으로 잘게 부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실 이 작업은 카카오버터를 녹이기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하는 작업이라 크게 중요하진 않지만 우리들이 가장 고생했던 작업이었다. 가장 큰 중식칼을 사용했어도 처음 쵸코를 칠 때에는 추운 날씨에 카카오버터가 딱딱하게 굳은 상태라 칼날이 이빨도 안 먹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나이들끼리 만드는 초콜렛. 안 되면 근성과 힘으로라도 해결을 본다. 어떻게 내리치고 칼로 긁어서 10원짜리 동전 이하 크기의 잔 조각들로 쵸코를 전부 쪼개는 데 성공했다. 보통 클 때는 한 손으로 덩어리를, 한 손으로 칼을 쥐고 쳐내는데 내 손은 유독 다른 사람들에 비해 따뜻한 편이라 카카오 버터가 금새 녹아내려서 아무래도 도와주러 온 동준군이나 상현군이 더 칼질을 많이 해야했다.... 미안해... 그런데 이거 녹아붙기 시작하면 진짜 기분나쁘단 말야.
조각은 바둑알 크기 이하기만 하면 별 상관 없지만 잘게 부수면 잘게 부술수록 녹일 때 용이하다. 그리고 이 초콜릿 부수기를 할 때 방의 난방은 잠시 끄는 것이 좋아. 부스러기가 여기저기 떨어질수밖에 없는데 난방중이면 그대로 녹아서 들러붙어버리거든. 아닌게 아니라 실제로 이렇게 만들고 치우는데 고생 깨나 했었으니까.

거의 쵸코와 동일한 양의 유크림을 냄비에 넣고 한소끔 끓이는거야. 사실 끓일 필요까지도 없고 그냥 가장자리에 김이 뽀글뽀글 올라오기 시작하면 그것만으로 충분해. 거의 데우는 느낌? 사실은 유크림뿐만이 아니라 식용유로도 비슷한 흉내는 낼 수 있어. 파베쵸코를 만들 때 이 유크림의 양이 쵸코의 성향을 결정하는데 비율적으로 다크쵸코가 많을수록 맛이 진해지지만 딱딱한 느낌이 되고 유크림을 많이 넣을수록 말랑하고 부드럽게 녹는 느낌이 돼. 내 생각에는 진한 맛을 먹으려면 그냥 다크쵸코를 먹으면 되지 질감을 느끼기 위해 먹는 생쵸코인데 뭐 어때 - 하는 느낌이라 조금 많은 느낌인 쵸코와 유크림 1:1 정도의 양으로 두고 크림을 데웠어.
크림을 데울 때 끈적하게 떨어지는 질감을 위해 시럽과 연유 적당량을 투입. 연유만으로도 파베쵸코를 만드는 진짜 얍삽한 방법이 있긴 한데 그건 너무 인스턴트식이라 성의가 없어보이니까 나중에 기회가 되면 포스팅. 일단 적당량이라고 적었지만 난 파베쵸코의끈끈한 느낌이 좋아서 시럽이나 연유나 둘 다 각각 40g정도로 꽤 많이 투입했어. 물엿이든 꿀이든 뭔 청이든 암튼 끈적하고 달콤한 당류의 소스라면 뭘 사용해도 무방해.
시럽 투입 후에는 엉겨서 타거나 눌어붙을 수 있으니까 계속 저어주는거야.

만들었던 유크림이 한 번 끓었으면 불을 끄고 60도 이하로 내려갈 때까지 식히는데, 그러면서 물중탕으로 아까 부순 쵸코가루를 녹인다. 약불로 냄비 바닥만 살짝 데우고 녹이는 훨씬 쉬운 방법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대용량을 만들 때는 불가능해. 뭣보다 온도조절도 힘들고 갑자기 온도가 솟을 수 있으니까 직접 열이 냄비 바닥에 닿게 하는 것은 좋지 않아. 초콜릿은 온도를 높이면 녹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익어버리기도 하니까. 일단 생쵸코니까 템퍼링을 생략해도 되는 이상 할 수 있는 성의는 지켜야지. 일단 걸리는 것 없이 부드럽고 끈적해질때까지 쵸코를 잘 녹여. 온도계가 있다면 편한데 밤중에 사러나갈수도 없으니까 일일이 손가락으로 찍어봐야 해서 손가락이 좀 아팠지만...
실은 유크림이랑 카카오버터 녹이기는 동시에 진행했어.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한 두 사람 더 있으면 일이 압도적으로편해지거든. 근데 3인이 붙어서 했어도 6시간 가량 걸렸는데 이걸 나 혼자 했으면 어떻게 다 했을지 지금 생각해보면 눈 앞이 캄캄...


카카오버터가 다 녹고 생크림이 살짝 뜨거운 정도로 식었으면 유크림을 쵸코에 투입. 소량이라면 쵸코를 녹일 필요도 없이 유크림의 잔열로 쵸코가 다 녹는데 워낙에 다량이니까 그건 무리... 처음에는 쵸코랑 유크림이랑 따로 노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둘 다 기름이니까 잘 휘젓다보면 섞이긴 섞여.
당연하겠지만 그러다보면 생크림보다는 굳고 쵸코보다는 훨씬 무른 느낌의 푹신하고 말랑한 콜로이드성 액체가 돼. 이쯤 되면 불 쓰고 데우는 [사실상 가장 마음 편한]공정은 다 끝난거야.

환소주 전날 재워주는 대가로 쵸코 만드는 데 투입된 김동준(17)군. 쵸코를 부수고 뒤적거리는 힘쓰는 작업을 시켰어. 덧붙여 이 친구가 고등학교 1학년생이라는 사실은 나는 물론 친한 친구들도 아무도 안 믿는다. 실제로는 온화하고 착한 친구인데 험악한 외모와 흉악한 덩치때문에 손해를 많이 보는 타입. 힘들게 만들었던 이 예쁜 파베쵸코를 이 친구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면 놀랄 사람들이 많을 것 같네에. 그래도 뭐 어때. 사람은 외모로 판단하는게 아니니까.


쟁반이나 적당한 크기의 틀에 트레이싱 페이퍼... 아니 이건 유산지라고 하던가. 암튼 이걸 깐 뒤 지금까지 만들었던 용액을 붓고 잘 편 뒤 탕탕 쳐서 위를 편 뒤 냉장고 1C칸에 집어넣어 1-2시간정도 냉각. 우리들은 이걸 집어넣은 동안 노가리 까며 밥 먹다 왔는데 그러다보니 어느 새 날짜가 다음날로 바뀌어 있었어. 그나저나 아홉시부터 만들기 시작해서 쵸코 만드는데 2시간. 포장하고 빚는데 4시간 가량이라니 이거야 원.

나중에 다 식은 쵸코는 주방칼을 불에 살짝 달군 뒤 3x3x1센치미터의 크기 이하로 각을 치는데 이 정도가 트레이에 한 큐에 넣기 좋더라. 실은 이 정도면 잘 안 들어가고 어차피 카카오 가루를 묻힐 때 우물럭 쭈물럭 주무르는 과정에서 살짝 더 작고 도톰한 모양이 되거든. 그렇게 해놓으면 이처럼 아무 느낌도 없이 뚱한 느낌으로 트레이에 들어가는데 참 못생긴 외양과는 달리 입에 집어넣으면 살살 녹아내리는 느낌이 좋아.
난 단 것을 못 먹어서 한 입 먹고 바로 머리가 아파졌지만...
생각해보니까 설탕 별가루나 견과류 같은 것도 있었는데 포장만으로도 시간이 집계가 안 되어서 모든 걸 포기하고 쵸코 자체에 대한 장식은 배제한 체 각치고 카카오파우더만 묻혀서 저렇게 포장. 그런데 카카오 파우더도 파우더 나름이지 차로 타먹는 그거 말고 진짜 카카오 가루를 갈아서 만든걸로 해야 해. 그래야 저렇게 부드럽게 용서가 되는 모양이 나오지 그렇지 못하다면 끝...장...
포장을 마치고 나니 4구짜리 트레이 세트로 4세트, 9구 트레이로 5세트, 그리고 5-6구정도 들어가는 젤리컵으로 9세트 정도가 나왔는데 이 다음날 환소주에서 지인들에게 다 나누어주었어. 다들 맛있게 만족하며 먹어주어서 정말 기뻤다.
...
발렌타인데이? 그딴게 뭐라고.
기껏해야 까맣고 달콤하고 촉촉하고, 사랑이 듬뿍 담긴 것을 주고받는 날에 지나지 않잖아?
by. Sterlet.
근데 생각해보니까 이거 여자가 남자 만들어주는 날 아니었던가.
근데 우린 남자들이 만들어서 남자 ㅈ.......
씨발 난 게이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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