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1일 화요일

정말 조그만 셀카를 찍어보자.



부유생물학 실험실에서 혼자 뒹굴거리다가, 정작 내가 충격먹었던건 지난 몇 년간, 그러니까 07년부터 햇수로만 7년에 이르기까지 맨날 현미경을 붙잡고 사는게 일상이 되어있는데도 맨날 클로렐라나 로티퍼같은것만 신나게 보고 그리다가 정작 사람 세포는 본 적도, 구태여 보려고 하지도 않았던게 쇼크였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무도 굳이 우리 몸에 대해서 볼 생각을 하고 있지도 않았더랬다. 심각하게 생각할 것도 없었지만 기껏 호기심이 동한 김에, 그렇다면 먹이생물 말고 순수히 별 이득도 없으면서 재미있는걸 해보자 싶어서 남는 프레파라트 글라스 가져와서 사람의 몸에서 볼만한 것을 긁어다 프레파라트로 만들었다.

가장 첫번째로 긁었던 것이 흔히 중학생들도 많이 해보는 대상인 사람의 구강 상피세포. 입안을 잘 헹군 뒤에 플라스틱 일회용 수저로 신나게 긁어 나온 점액질을 식염수 두 배로 희석시키고 프레파라트로 만들었다. 대학 입학 이래 내 셀카라는걸 찍어 본 적이 없는데 이런 식으로 찍게 되다니... 정말이지 조그만 셀카 되시겠다.


충분히 희석시켰다고 생각했는데 박박 긁어낸 것이 의미가 있었던지 여기저기서 덩어리 져 있는 상피세포를 볼 수 있었다. 메틸렌 블루같은 것으로 염색을 하고 보았으면 좀 더 깔끔하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실험실도 아닌 실험실 혼자 보고 있는거라 아무거나 막 건드리기도 조금 애매하고 괜히 시약 맘대로 꺼내 쓰기도 애매해서... 하지만 염색 없이도 이렇게 깔끔하게 잘 보이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현미경 붙잡는 생활을 그렇게 오래 했으면서도 나를 볼 생각을 하지도 않다가 이렇게 보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의미는 없지만 재미는 있었으니까 괜찮아.


겸사겸사 혈구세포도 찍어봤다. 바늘이 없어서 커터칼 불에 달군 뒤에 에타놀로 식혀 소독하고 푹찍... 해서 얻은 핏방울을 확대. 도너츠 모양의 혈구가 우글우글 바글바글했다. 사진으로만 보면 그냥 혈구들이 가만히 있는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여기저기 흘러다닌다. 허나 그래봐야 결국 한 번 공기중에 노출되었기에 조금 지나다보면 굳어져서 서서히 움직임이 멎더라. 동영상으로도 찍어두기는 했는데 빼내기가 귀찮아서... 피를 본 건데 왜 그다지 빨갛지 않냐고 물어보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색깔이 거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 얇게 편 뒤에 밝은 빛을 쪼여서 보는 것이기에 색깔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보았을 때에도 붉은 색보다는 마치 연한 연두색처럼 보이더라.

오늘도 재미있게 놀았다. 의미는 없었지만 재미가 있었다면 그걸로 충분해.

by. Ster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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