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시작은 어느 분 축전삼아서 만들게 된 잼이었더랜다. 그건 차치하고 딸기잼이나 포도 잼, 사과 잼이나 심지어 가끔 잼으로 오인받는 유자차에 이르기까지 조금 당분이 부족하더라도 설탕과 팩틴을 첨가해서 만드는 잼이라면 기본적으로 과일일텐데 왜 뜬금없이 양파로 잼을 만들었느냐 하면 - 이전에 조금 얻어먹어 보았을때 혀가 녹을 정도로 달콤한 주제에 양파 향이 죽지도 않고 강해서 꽤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양파의 효능이야 워낙에 유명하고 양파야 한국사람이라면 못 먹는 사람이 [있긴 있더라마는 웬만해선 거의] 없을테니까. 그냥 씹어먹어도 맛있는 양파를 잼으로 만들면 얼마나 새콤달콤 좋을까아. 마침 주말 휴무때 할 일도 없는 관계로 바로 가스레인지의 불을 지폈다.

잼이란게 원래 딱히 어려운건 아니더라도 계속 불 봐가며 휘적휘적해야 한다는 것이 대단히 지루하다. 그래서 갤러리에서 할일없어보이는 바보 친구들 두 명을 불러다가 이야기라도 하면서 같이 잼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저 우람한 팔뚝은 갤러 태현군의 팔뚝[...] 사실 이 친구 양파를 전혀 못 먹는데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양파잼 만드는데 참가했다.
사실 그냥 채를 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고 질감을 생각하면 굳이 즙을 낼 필요도 없다. 난 좀 부드러운게 좋을 것 같아서 갈아내려고 했는데 거짓말 좀 보태서 애 머리통만한 양파 다섯개를 다 갈자니 이거 꽤나... 엄청나게 귀찮았다. 그래서 즙은 처음 두어 개 정도만 갈고 나머지는 채를 쳤다. 어차피 가열하면 다 흐물텅해질텐데 뭣하러 땀흘려가며 다 갈 필요 있겠니.

태현군 참 덩치 크네에 ㅇㅂㅇ ! 늘상 모이면 가장 막내인데 덩치는 또한 가장 곰 같고 키도 커서 저래 양파 갈고있는 저것도 꼭 무슨 벌통 뒤지는 곰 같은 모양이 되어버렸다. 곧 호텔조리학과인가 들어간다는데에 양파 못 먹어서 어떡하니ㅋㅋㅋㅋ 그래도 마지막에 잼을 완성할 즈음에는 본인 스스로 몇 숟가락인가 잼을 먹어보긴 하더라. 어차피 달아서 그런지 그냥 잘 먹더라.
이 때 즈음에 주방에서 있던 사람들 다 눈물콧물 흘리고 있었다. 양파의 경우 과육 안에 다량 함유된 휘발성 성분인 Allyl Sulfide 황화알릴은 캡사이신처럼 지방대사를 촉진하여 다이어트에 좋은 반면 이렇게 자극적이라 양파를 썰 때마다 눈물을 흘리게 한다는 것도 조금 문제다. 하지만 이 물질이 있어 머리아플 정도로 달콤한 양파잼이 가능하다.
황화알릴은 휘발성인 성질에서 보듯이 열에는 또 약하기에 조금만 열이 가해져도 쉬이 Propyl Mercaptan 프로필 메르캅탄으로 변질된다. 일종의 다당류인 이 물질은 일반적으로 설탕에 쓰이는 수크로오스 이당류보다 50배 가량 단 맛이 난다고 한다. 그렇기에 요리에 양파를 잔뜩 넣으면 딱히 설탕을 넣지 않아도 은은한 단맛이 나는 것이다.
양파잼 역시 양파의 그런 성질을 이용한 것으로서 사실 설탕이 반이긴 해도 들어간 설탕보다 훨씬 더 강한 단맛을 내게 된다. 양파 향이 가득 녹은 설탕시럽이라는 느낌이라 비단 빵에 발라먹는 것 외에 요리의 단맛을 내는 용도로도 나쁘지 않다.


난 그냥 냄비로 했지만 가급적이면 바닥이 두꺼운 냄비에 기름을 조금 바르고 센 불로 가열시킨다. 맨 처음 갈거나 채썰거나 다져놓았던 양파를 투입하면 곧 물을 뿜으면서 숨이 죽어간다. 많이는 안 넣어도 되고 이 때 소금을 한 두 꼬집정도 뿌려놓으면 양파가 숨이 죽는 것이 가속된다.
그리고 나서 양파가 노랗게 갈색이 될때까지 계속 바닥에 붙지 않게 휘적거리면서 불을 보고 있어야 한다. 양파가 변색되기 시작할 때까지는 센 불로 계속 가열하는 편이 좋다. 양파즙은 계속 졸아드는데 설탕을 넣었을 때 떡 되는거 아닌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최대한 양파 자체의 단맛을 낸 다음에 설탕이 들어간 뒤에는 물을 [많이는 넣지 말고 조금] 넣어서 희석시킬 수 있으니까.


양파가 열 자체로 갈색을 띄기 시작한다면 양파 중량의 2/3정도 되는 양의 설탕을 넣어준다. 내가 썼던 양파가 개당 200g 내외였고 그런 양파를 다섯개를 썼으니까 거의 1kg. 쉽게 말해서 설탕을 600g 이상 넣어야 된다는 뜻이다. 300cc짜리 컵으로 두 번 갈색 설탕을 퍼서 넣고 휘저었다. 이 때부터는 불을 약불로 줄여 졸이기 시작한다. 어차피 양파 단맛이 더 지져봤자 나올 리 없다 싶으면 그냥 숨을 죽이는 것이다. 설탕을 넣으면 바로 끈적해지니 잼처럼 보이지만 아직 한참은 멀었다.
완전히 곤죽이 되어서 양파 건더기의 흰 빛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졸여야 한다. 나는 약불로 거의 두 시간 가까이 끓였던 것 같다. 너무 캐러멜화가 심해서 짙어지기 전에 조금씩 물을 보충해주기는 하는데 그러다간 잼이 국물되어버리는 수가 있으니 말 그대로 중용을 지키는 것이 제일 골치아프다. 내내 졸이면서 물만 한 400cc 내외로 보충해준 것 같다.

이처럼 건더기가 잘 보이지도 않는 맑은 카레처럼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거의 잼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설탕이 절반이니 굉장히 끈적끈적한 물질이 되기는 했지만 잼이라고 보기에는 점도가 조금 떨어진다. 그야 고온이기도 하지만 과일들이라면 기본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팩틴이 양파에게는 전혀 없으니 점도가 떨어질수밖에 없지. 이전에도 양파잼을 한 번 먹어 본 바 있어서 양파잼이 좀 흐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 점을 감안해서 조릴 때의 물은 충분히 부었다. 다만 역시 점도가 기분나쁘게 흐르게 된다.
그래서 가져온 비장의 무기가 분말젤라틴 ㅡㅡ;; 물을 전혀 안 부으면 어디의 달고나가 되어버릴 지경이라 물을 적당히 부어 잼으로서의 당도는 딱 맞췄다. 하지만 그러면 분명히 줄줄 흐르겠지... 분말젤라틴을 반 숟갈정도 뿌리고 따뜻할때 휘휘 저어 전부 혼합했다.

개폐용기에 집어넣고 완전히 빠지지는 않을 정도의 찬물에 담가둬서 식히면 된다. 덧붙여 뚜껑은 식은 후에 닫는 것이 좋다. 나중에 식고 나면 열 때 엄청나게 고생하게 된다. [내가 그랬으니까] 일단 냉장고에서 차게 식히고 나면 딱 점도도 알맞게 되어서 버터 나이프로 푹 떠면 잘 떨어지고 빵에 올려두면 흐르지 않는 점도가 된다.
오픈 토스트로 발라먹거나 카나페로 치즈나 계란반숙, 얇게 저민 햄 같은것과 곁들이면 상당히 괜찮은 전채가 된다. 크레이프의 부재료로 써도 양파향 가득한 달콤함을 느낄 수 있고 사실 이런 식으로 잼의 용도에 충실하기보다는 양파를 넣지 않고 양파향을 내고 싶은 요리에 넣는 용도로도 괜찮다. 양파의 강한 단맛과 향이 인스턴트 방식으로라도 요리에 맛을 더해준다.
죽은 사람도 살리는, 건강에도 좋고 맛도 있는 양파잼. 네이버 모 웹툰의 맛없는 소생의 잼을 재현하는 겸, 그림도 잘 못 그리니 축전이랍시고 만들어보긴 했는데 맛 없다는 그것과는 달리 워낙에 특색있는 맛이 나서 어떨지 모르겠다. 부디 잘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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