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라지 이거. 진짜 맛있고 나 같이 가래가 많은 사람에게는 정말 좋은 식품인데에, 문제가 있다면 생도라지 껍질 벗기고 손질하는 것이 너무 귀찮다는 것이다. 사실 어머니도 그런 연유로 조금 바빠진 요즈음에는 잘 도라지같은 손 많이 가는 나물은 안 해주는데 어디에서 선물로 5년묵은 장생도라지 - 인삼이랑 구분이 안 갈 정도로 굵은 녀석을 - 몇 뿌리인가를 얻어오셔서 이거 비싼건데 바쁘다고 안 먹기도 그렇잖아? 아무래도 그냥 나물보다는 기름에 지져서 양념구이한 녀석이 더 밥맛이 땡기니까 오랜만에 도라지 구이를 하기로 하고 나도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가장 마지막으로 먹어본게 한 7-8년쯤 전이었나 진짜 도라지 안 먹어본 지 오래되었다. 연초 태우기 전부터 가래가 많은 내게는 특히나좋은 음식인데 역시 손질이 귀찮아서 원. 어쨌거나 조금만 손질하고 양념발라서 구우면, 그렇지 않아도 너무너무 맛있는 도라지인데 너무너무 맛있는 양념으로 너무너무 맛있게 구울테니까 더 맛있어질거야!

사실 제일 이게 귀찮고 짜증나는 작업이다. 어차피 취미긴 하지만 나는 요리 중에서도 특히 칼 쓰는데에 서툴러서 하다보면 가끔 도라지 베는 김에 손가락도 베고 도라지 껍질 벗기는 김에 손가락 껍질도 벗기고 그러는데 이번에는 전혀 무리 없이 전부 손질했다.
일단 쓴맛이 엄청 강한 뇌두 부분을 통째로 칼을 넣어 뚝 떼어낸 뒤 칼을 도라지 뿌리에 세로로 비스듬하게 대고 긁으면 상피가 일어나는데 그 부분을 잡고 그냥 쭉 벗겨내면 된다. 도라지 섬유 결은 세로인데 겉껍질은 가로 결이니까 그 방향대로 벗기는 것이다. 너무 칼을 깊게 집어넣으면 살까지 다 뜯어먹으니까 주의 ㅡㅡ;;

어머니는 이걸 상당히 고속으로 하시는데에, 아무래도 정식으로 조리사인 분과 단순한 심부름+짐꾼인 나랑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해도 훨씬 잔뿌리도 많은 것을 딱 내 2배속으로 하시는 것을 보면 좀 내 자신이 작아지기는 한다. 내가 낑낑거리면서 도라지 손질을 하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낄낄거리시며 빨래도 돌리고 화장실까지 다녀오시며 참으로 여유 넘치게 하셨다.
그래도 이전처럼 도라지 살까지 반은 벗겨버리고 잔뿌리 다 잘라먹지는 않잖아. 괜찮아.


도라지를 두들겨 펴는 것은 내가 했다. 아무래도 나이먹은 통도라지니까 세로로 칼을 넣어 반으로 쪼개어 했고 나머지 잘잘한 도라지는 그냥 통째로 두들겨 폈다. 나무방망이 옆부분으로 도마에 댄 뒤 서너번 두들기면 펴진다. 세게 하면 잔뿌리나 즙 다 튀고 쪼개지고 난리 나니까 그냥 살짝 뿌리가 펴질정도로만 해도 양념 잘 배니까 힘조절에 주의. 이번에도 중용이다.

그 동안 어머니는 단 양념장을 만들고 계셨다. 고추장에 물엿 대신 집에서 내린 매실청을 넣고 마늘과 생강 다진 것 조금과 조림간장, 맛술 한 잔씩. 깨와 쪽파 잘게 썬 것을 섞어 휘적휘적하면 끝이지만. 결국 도라지 구이의 맛 중 반은 이 양념장 맛이니까.


올리브유 두른 팬에 도라지가 노랗게 될 때까지 약불로 초벌구이하고 다시 양념을 묻힌 뒤에 여전히 약한 불에 양념이 잘 끈적하게 배일 때까지 지져낸다. 양념에 좀 당이 많은 편이니 조금만 불이 세져도 타기 시작하니 주의. 사진에서는 꼭 볶는것처럼 나왔는데 볶는거랑은 전혀 다르고 두들긴 양면을 끈기있게 구워나가야 한다.
그렇게 다 지져낸 도라지 구이는 소주 안주로 그만이다. 밤 10 넘어서 도라지를 다 지져냈는데 그만 너무 땡기는 바람에 밥 한공기랑 지진 도라지 반절을 혼자 다 쳐먹어버렸다. 슬슬 날씨도 추워지고 감기가 심해지는 계절이 되자 몸이 필요한지 더없이 입에 붙는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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