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전자렌지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긴 하지만 레토르트가 질릴 때, 혹은 남는 식자재나 반찬이 걸리적거린다면 아무거나 쳐넣고 기름으로 볶아서 해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아직도 전국의 수 많은 자취생들은 이거넣고 저거넣고 뻐지직 뻐지직 오늘도 신나게 저녁을 볶아대고 있겠지. 그런 의미에서 그 언제적인지는 몰라도 프라이팬과 재료를 알 수도 없고 맛도 천차만별인 볶음밥을 나는 지금도 집에 혼자 있거나 사촌형이 방을 비운 날에는 대충 해서 먹고는 해.
내가 매운걸 좋아하는 편이라 김치가 없는 날에도 고추기름이나 캡사이신 소스를 한주먹씩 넣고 콜록거리며 만들곤 하네. 김치를 넣으면 다른 부자재가 어떻게 되더라도 맛이 똑같아지는 편이라 가끔 김치가 아닌 매운 것을 찾는 날에는 꽤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

당연하지만 재료는 남는 재료를 써야지 뭐. 어제 안주로 쏘야해먹고 남은 피망이랑 양파, 소세지 조각들. 더할 게 있다면 계란 깨서 계란물 내는 정도. 여기에 밥만 있어도 맛이나 비주얼이나 그럴듯한 볶음밥을 만들 수 있어. 이런 식으로 식자재를 쓰기보다는 사실 남는 멸치볶음이나 마늘장아찌 등 상상을 뛰어넘는 별별 '남는' 반찬을 집어넣어서 만들 수도 있는 거지만.


나머지야 뭐 별 거 있나. 그냥 지지고 볶고 휘적휘적 뒤엎는 일 정도. 정석이긴 한데 순서는 어느정도 지켜줘야 하는 편. 자취 처음 시작하거나 요리를 해본 적 없는 친구들이라면 그냥 한꺼번에 다 넣는 일이 있는데, 어느정도는 지켜줘야 되는 순서가 있어. 팬에 기름 두르고 달구는 것은 당연하고, 딱딱하고 오래 걸려 익는 재료부터 넣다가 마지막으로 갈수록 고기나 부드러운 재료, 밥을 넣고 볶는 편. 아까 재료대로라면 양파->피망->계란물과 소시지->밥 정도의 순서.
밥을 넣으면서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하고 그밖에 액체양념을 넣는다면 이 때 넣지. 마늘과 파, 양파처럼 화력을 가해서 맛을 변성시킬 필요가 있는 식자재가 아니라면, 좀 진득한 느낌의 양념인 케찹이나 굴소스를 넣는다면 속의 당분때문에 타기 쉬우니까 그런 단단한 양념재료들이 충분히 익은 뒤에 넣는게 좋아. 그렇게 만들어도 팬에 덕지덕지 들러붙기 쉽다 ㅠㅠ...

맛도 볼 필요 없이 그냥 잘 익으면 완성된거지만. 접시에 담고 아직 냉장고에 잡초처럼 남아있는 파마산 가루와 내가 좋아하기 그지없는 후추를 한 주먹 뿌려. 그런데 대다수의 경우에는 설거지도 귀찮으니 접시나 데코 그딴거 없고 그냥 팬 째로 들고 우걱우걱 먹는게 이 계열 잡탕요리의 정석 ^^ 마구 만든 비빔밥은 막 비빈 양푼을 들고 볼따구니가 메어질 정도로 먹는 것이 왠지 맛있게 느껴지는 것처럼 이 경우에도 사실 팬을 통째로 들고 먹는게 더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우우 밥은 맛있게 먹었다마는, 슬슬 또 일 나가야 되지 ㅠㅠㅠㅠ 사촌형이 없을 때는 혼자 먹어야 해서 쓸쓸해진다... 학교 식당이나 밖에서 급하게 대충 때우는거야 어느쪽이냐면 혼자 먹는것이 편한데 같이 먹을만한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 먹는 건 또 외롭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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