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1일 화요일

벌집을 잡기 위해서.


이게 무슨 뜬금없는 저거넛 슈츠 무장이냐고 할 지 모르지만 사실 이 때만 해도 나랑 사촌형은 상당히 진지했다... 보름쯤 전부터 사촌형 자취방 베란다에서 벌이 한두마리씩 출몰하기 시작하다가 1주일 전부터는 서너마리씩. 급기야 엊그제부터는 열 마리 가차이 해가 뜬 날이면 편대비행을 하며 베란다 위를 윙윙거리고 날아다녔는데 이미 어릴 적에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신나게 벌에게 쏘여 본 전적이 있는 우리로서는 반가울 리가 없었다. 벌도 꿀 먹을때나 고맙지 이렇게 생활공간에 나타나서야 반가울 리가 없잖아. 그것도 그냥 꿀벌이 아니라 좀 더 크고 날렵하게 생긴 말벌이었어. 

베란다 어딘가에 새로 집을 지었거나 혹은 탐색중인 것이 아닌가, 혹은 먹이가 될 만한 것이 있지 않은가 생각이 미쳤거든. 생각해보면 맨날 음료수같은 걸 꺼내거나 할 때 바닥에 몇 방울 떨어뜨려도 제대로 닦지 않던가 할 때가 많았잖아. 그래서 사촌형이 직접 물과 세제를 풀어서 베란다 바닥을 박박 문질러 닦았고 나는 이렇게. 


박멸


....하기 위해 사람도 잡을 기세로 베란다의 모든 창을 봉쇄한 채 저렇게 약을 치기 시작했다. 사촌형의 두꺼운 패딩을 빌리고 버프 쓰고 쉬마그 두르고 틈이 없도록 고무장갑을 꼈으며, 노출된 눈이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별 도리가 없었으므로 그냥 살충제를 들이 부었다. 들어갔던 내 목이 다 칼칼하고 눈이 따가울 지경이었다. 날아다니는 살충제 입자에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베란다 공기가 희부옇게 되었을 즈음. 말벌이 쏠지 않았을까 의심되는 종이박스를 전부 해체하고 틈새에도 구석구석 살충제를 들이부어서 다시는 벌이며 바퀴벌레가 들어서지도 못하도록 최선을 다했다. 

먹이며 거처가 될 만한 구석을 다 살충제로 발라 막은 뒤, 나는 베란다에서 나오고 문은 계속 막아뒀는데 옷에 남아있던 살충제 냄새만으로 정신이 완전히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나중에 다시 베란다와 원룸 현관을 열어서 전체환기를 시도했는데 그래도 그 날 하루종일 방에 배인 질펀한 살충제 냄새란. 아무리 곤충에게만 작용하는 물질이라고 해도 생물체를 픽픽 죽여버리는 약인데 이게 사람에게 영향이 아무것도 없을 리 없잖아. 죙일 머리아프고 목 아프고 심란하더라 . 

...

하여간 이런 개삽질을 한 뒤로 이틀째. 이젠 방에 벌이나 바퀴벌레는 물론이고 항상 심심하면 날아들던 모기들도 깨끗하게 없어졌다. 그래도 아닌 야밤에 땀 뻘뻘 흘려가며 패딩입고 삽질한 보람은 있었으니 다행이다. 이제 늦더위도 끝났으니 당분간 이런 웃기는 방제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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