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도 이 사진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이 상태로. 주방 개시 직전 사진을 찍은 뒤 이후로 미친듯이 칼질과 데코만 해댔다. 다행히도 구솔형 친구분인 Anal -_-;; [그 아날 맞다] 님이 불 쓰는 요리는 대신 해 주셔서 다행이었지 정말. 아날님 화력요리 지원에 목마가 갔고, 나는 별 거 없이 그냥 순전히 술 관리랑 회 써는거랑, 카나페 데코 말고는 한 것도 없는데 이날 피곤해서 진이 죄다 빠져버리는 줄 알았다. 하여간 사진은 내가 하루종일 빌려 잡았던 식칼과, 구솔께서 가져온 발렌타인 30년산이랑, 그리고 캐비어.
이렇게 갖다놓은 뒤 한숨을 푹 쉬고, 바로 칼 잡고 도마 깐 뒤 칼질 개시.

이 날 간판은 김시발이 그려주었다. 호노리 그림풍으로 문 앞에다 그려 걸었던 것이 '환상주점 : Gensokyo the Pub' 족자 간판인데 꼭 이걸 걸어야 했나 싶지만 이미 가게 BGM부터가 미쳐가지고 동방 어레인지를 틀고 있는데 걍 미칠거 확실하게 미치자는 의미에서 김시발로 하여감 족자를 그리게 했다. 더 무서운 것은 김시발이 저 족자 두 개 그리는데 불과 닷새 걸렸다는거.... 중간에 착오가 있어서 A2 사이즈 족자 두 개가 나왔는데 나중에 업체에서 다시 A1 사이즈로 인쇄해주었다. 나중에 탄색연때 내거나 혹은 그냥 작업실 데코용으로 쓰든가 해야지;;;


내가 여기서 정말 아쉬운게. 캐비어 올린 카나페랑 올리브랑 연어 곁들인 카나페랑, 새우에 올리브 곁들인 카나페들... 정말 모양도 이쁘게 되었고 만드느라 개고생을 했는데 정작 개별로 하나하나 찍은 사진은 없고 이렇게 전체적으로 죽 늘어놓은 사진밖에 못 찍었다는 사실이다. 열 안 쓰는 주방 멤버, 나랑 사해문서공이랑 케이네는 진짜 하나하나 잔손질 들어가는거 저만치 만들어내느라 개삽질을 해야 했는데 잘 못 나온거 보면 슬퍼 ㅠㅠ... 먹는게 맛으로 먹는거긴 하지만 시각적인것도 없지는 않잖니.
생각해보면 저기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고 해도 조명이 좋은 편이 아니라 죄다 흔들리거나 망가졌겠지만. 일단 카나페 3종 중 하나는 흰 빵에 크림치즈를 가득 바르고 캐비어를 올린 단촐한 것. 그리고 하나는 크래커에 치즈와 칵테일 새우를 곁들인 것, 하나는 크래커에 연어와 케이퍼를 곁들인 것인데, 그때그때 급할 때마다 바리에이션을 새로 만들어서 냈어. 아무래도 캐비어가 비싼 재료라 그런지 인기가 가장 많았던 느낌. 사실 이런 가니쉬 개념의 요리는 금새 배채우려고 먹는게 아니라 아페테리프 느낌으로 맛만 보는건데 이건 뭐 완전 폭풍같이 사라지더라;;

잘 안 보이지만 원래는 이거 메기가, 회 썰고있는 내 손을 찍으려고 했던 모양... 그런데 흔들린데다 초점도 안 맞고 설상가상으로 어둡기까지 해서 Fail.... 그렇지 않아도 손 부들부들 떨어가면서 카나페 만들다가 급하게 해동이 완료된 회를 자르고 썰어야 했는데. 후반쯤 가서는 해동이 제대로 안 된 것도 있고 내가 귀찮고 피곤한 것도 있어서 평소엔 종잇장처럼 얇게 썰다가 나중 가서는 그냥 막회마냥 숭덩숭덩 썰었다. 뭐 어때. 재료 아낄 자리도 아니고 원래 재료는 입 안 듬뿍 들어가야 맛있어. 맛있는거니까 많이 큼직하게 먹을수록 더 맛있겠지 뭐.
회는 일단 연어 [정확히 말하자면 이거 회라기보다는 살짝 레몬즙이 마리네이드 된 훈제연어] 랑 도미, 그리고 빅아이 참치였다. 다다끼를 할까 싶었는데 굳이 생물로 먹어도 맛있는거, 조금 지난 회도 아니고 뭣보다 토치램프도 없으니 그냥 막바로 썰어서 제공.
하여간 이렇게 불평은 해도, 게다가 다들 생선보단 고기가 맛있다고 불평은 해도 역시나 재료 비싼 순으로 카나페나 회부터 없어지더라. 생각해보면 참치도 그냥 죄다 눈다랑어였는데- 난 기름기가 없는 쪽을 좋아해서 하긴 했어도 다들 맛있을까 말까 긴가민가 했는데 다들 맛있게 먹었다니 다행인듯. 근데 생선 이렇게 많이 썰어본건 난 진심 처음이었어;;

나는 사실, 음식하느라 자리에 거의 앉아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그래도 앉아있던 사람들 말 들어보면 다들 화기애애하고 맛있는 자리였다더라. 맥주는 한 사람이 1000cc씩 마신다고 계산하고 대강 24캔들이 짝단위로 두 짝을 구입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이 맥주가 모자라는 사태가 생겨서 치장용으로 비축해둔 무알콜 맥주까지 죄다 동이 났다;! 그것도 연회 개시한지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아서;;;!!
그야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저렇게 식탁에 맥주캔이 수북하게 쌓이기 시작했고 맨날 심심하면 모여서 술마시는걸로 친목질 하는 사람들인데 기껏해야 두 짝 가지고 택도 없긴 하지... 게다가 김시발이라던가 루미스라던가, 술 마시는걸로 치자면 이 바닥에서 걸출한 인물들이 너무 많아서, 일단 남는 여력을 후딱 메꾸기 위해 잔금으로 맥주 사러 몇 명 보내고 나는 곧바로...

급한대로 남는 재료로 칵테일이라도 만들기 착수. 원래는 화이트럼이 들어가야 하는데 럼은 없고, 대신 같은 증류주기도 하고 빛깔 없다는 점도 똑같으니까아, 구솔께서 사오신 앱솔루트 보드카를 통째로 까넣고 라임즙 왕창, 그리고 나머지는 얼음에 콜라를 죄다 채우는 방식으로 초급조 Cuba Libre'를 만들어버렸다. 일단 뭐 화이트럼이 맛이 약한 탓도 있지만 대강 특유의 한약맛이랑 청량감은 비슷하게 나와서. 일단 이대로 전부 돌렸다. 앱솔루트 한 병 까넣어서 도수 7도 내외의 약한 칵테일이 여럿 양산되었다. 수십잔 나왔으니 이걸로 일단 부족한 취기를 채웠더랬다.
정작 구솔형은 이거 가져오시고도 이미 너무 술 드신 탓에 맛보지도 못하셨다 잉 Orz


어느정도 좀 진정되고 난 뒷정리 사해문서공과 주방... 인데 앞쪽은 정리가 아니되어서 지저분하다 ㅠㅠ 하여간 다들 그렇게 신나게 쳐먹더라니 막판에 결국 음식 남더라. 하기야 아무리 다들 많이 먹을 때라고는 해도 내가 음식 한 명당 돌아가는 양 계산해보니까 1.2kg 나오더라. 1인분이 300g 기준 잡아도 4인분씩 전원이 먹는다는건 불가능하지. 결국엔 훈제해서 익힌 닭고기까지만 서비스 하고 다음에 내려고 했던 Pancit Canton이라던가는 내지 못했다.
다만 이 직전에 같이 냈던 홍합구이 - Baked Tahong이 굉장한 호평이었는데, 무려 홍합 원래 못 먹던 이들도 맛있게 먹었다고 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정작 웃기는건 이 때 주방 멤버들은 기껏해야 카나페 한 두개, 회 한두 점, 홍합 한 두개만 먹어보고 술도 취할까봐 거의 못 마셔가며 칼질하고 설거지하고... 아주 개고생의 끝판을 보고 왔더랬다.

하여간 주방에서 삽질하고 있는 사이 분위기는 되게 훈훈한 모양이었다. 일단 내가 써냈던 레시피가 괜찮았는지 화력 요리는 대체적으로 호평이었고 생선도 해동과 칼질이 [물론 후반부 가서 말아먹긴 했지만] 잘 되었는지 다들 열심히 가져다 먹었다. 여차저차 해서 칵테일도 거의 다 나갔고 급하게 사오라고 시켜서 때운 OB 골든라거로 부족한 술도 채우기는 했다.


아오 이 미운 손들아... 난 피곤한데 너희들은 즐겁구나. 내 표정이 존나 피곤한데 실제로 이 때는 많이 피곤했다, 돈 들여 시간 들여 노동 들여가며 개고생을 하긴 했는데, 뭐 나름 즐겁지 않을것도 없었지만 바빠서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타는 목 축이려고 술만 때려 넣었더니 이 때쯤 슬슬 취기가 돌기 시작하더라.... 먹은 것도 없이 맥주만 몇 캔 마시고... 그래도 맥주도 맛있는 튀링거 필젠/바이젠 한 캔씩은 마셔봤으니 그렇게까지 아쉽지는 않지; 나름 배도 부르고. 생각해보면 애초에 이 자리가 난 본전 제일 못 건지고 있는거잖아 ㅠㅠ

이지형이랑 이날따라 대화를 거의 못 했는데 왠지 피곤한 눈치시기도 하고 그랬다;;; 확실히 일요일 밤 모이는 일정이라 좀, 다음날 출근 일정도 생각해야 하고. 나도 이날 일일호프 일정 싹 다 마치고 청소 끝낸 뒤 바로 전북으로 귀환했다. 다행히 밤 12시에 전주로 가는 버스가 있어서 몸을 실을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리고 전주에서 시간 죽이다가 아침에 등교.
이지형 눈빛이 다른 때 뵈었을 때보다 몹시 피곤하다 ㅠㅠ 그나저나 대체 요시카 모자 뭐얔ㅋ

기본적으로 일일호프하던 Bar 음악을 내내 동방프로젝트 어레인지로 틀어놓고 있었는데 중간에 K-Waves 어레인지가 나오는 기회가 있어서 어레인지의 로우휘슬 선율에 맞추어 나도 로우휘슬을 불어보았다. 마이크 소리가 크지는 않아서 간신히 묻힐락 말락 간주에 겨우 들리는 수준으로 연주하기는 했는데 꽤나 나도 얼큰해진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삑사리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이 캐비어도 꽤나 비쌌는데 반절정도 남았다... 헌데 이거 집에 가져갈동안 상하지 않게 냉각하는것도 문제인데다 그렇다고 이 귀한걸 버릴수도 없어서, 급히 치즈랑 곁들여서 먹었다 .그래도 이 비싼 재료를 별 생각 없이 숟가락으로 퍼먹을 수 있단 점은 분명 행복할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쿠라나 명란젓이 더 맛있는 것 같다. 짭짤한 맛은 좋은데 기름이 많아서 조금 느끼한 감도 들고;; 비싸다곤 하는데 왜 비싼걸까.

마지막에 예비군들이랑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 이들에게 제공되었던, 또한 구솔께 기증받았던 위스키 발렌타인 30년산. 이거 대강 바에서 한 병 따는데만도 무지막지한 각오를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가장 비싸거나 연식 오래된 위스키래봤자 21년식이 한계였으므로 발렌타인 30년산은 굉장히 새로운 느낌이고 과연 연식이 깡패구나 하고 느끼게는 했다... 헌데 솔직히 말해서 내 취향은 좀 스모키한 맛이라 그런지 ㅎㅎㅎ 시바스 리갈이나 혹은 페르노리카 계열의 스탠더드 위스키가 더 입에 맞았다. 그래, 예를 들자면 패스포트같은 그런 것.
...
하여간 올해 3번에 이었던 동방프로젝트 매니아 트위터리안 친목회도 종료. 첫번째는 동계 우이동 MT였고 춘계는 빼먹었고 두 번째는 하계 밀양 MT. 그리고 네 번째는 원래 서바이벌 게임 탄막놀이를 예정하다가 예상외로 급히 날씨가 추워진 점이나 지자체 협의가 지체되어 급히 일일호프로 선회했는데, 수도권 트위터리안이나 동인들에게 크게 어필하여 다들 재미있게 잘 먹고 잘 마시고 놀았던 것 같다. 덧붙여 나 동인들이나 덕후들 친목할때 이렇게 초호화판으로 상차려본것도 처음. 진짜 평소에 집에서 단순하게 먹거나 마실때는 안 쓸 식자재들을 양으로 밀어붙일 수 있다는 점은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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