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bon appetit

영화로는 아직 보지 못했다. 개봉당시 보러가는 길에 일이 생겨 되돌아 와서는 금방 막을 내렸다. 그간 다운을 받아서 볼 수도 있었지만 책으로 먼저 읽고 싶었었다. 그래서 서점엘 가서 원작을 찾아 구매완료. 필력 제대로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헤로인처럼 언제 끊어야 할 지를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중간에 단락에서 내용이 변할 때 끊어 읽곤 한다. 지금 반 쯤 읽었고, 마음에 드는 내용을 체크해 놓기까지 했다.


@One day
이렇게 덧붙이는 날짜는 2013.3.11
어느 날은 밤에 잠자기 전에 읽고 어느 날은 하루종일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읽곤 했다. 책이 기가막히다. 그리고 방금 책의 마침표를 찍었는데 어느새 눈은 팅팅 부었고 한손에는 흠뻑 젖은 손수건이 들려있었다. 간혹가다 책을 읽고 운적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넋놓고 울어버린건 처음이다. 엠이 불쌍했고 또다시 홀로 남은 덱스터가 애처롭고 가여웠다.
둘은 마주 보고 웃었다. 그리곤 마치 무슨 생각이라도 났다는 듯 성큼성큼 세 발자국 만에 거실을 가로지른 엠마는 덱스터의 얼굴을 잡고 키스했다. 그의 두손이 그녀의 등에 가보니 드레스가 여전히 열린 채였다. 그녀의 서늘한 맨살은 샤워의 물기로 촉촉했다. 둘은 그렇게 한참 동안 입을 맞추었다. 입을 떼고 엠마가 여전히 그의 얼굴을 잡은 채로 그를 뜨겁게 쳐다보았다.
"나한테 괜히 집적거린 거라면, 덱스터."
"안 그래."
"잘 들어. 날 속여먹거나, 날 낙심시키거나, 날 배신하면, 너 죽여버릴 거야. 하느님께 맹세하건데, 네 심장을 먹어치울 거라고."
"안 그럴게, 엠."
"맹세해. 절대로."
엠마의 얼굴이 구겨지더니 그녀가 머리를 세게 저었다. 그리고는 그녀가 다시 그를 감싸 안았다. 엠마가 얼굴을 덱스터의 어깨에 세게 비비며, 분노한 사람의 신음 같은 소리를 냈다.
"왜그래?" 그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엠마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드디어 널 잘라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넌 그럴 수 없을 거야." 덱스터가 말했다.
재미의 종류는 달라졌지만 둘은 사실 즐겁고 재미나게 지냈다. 그 오랜 그리움과 번민, 열정이 사라진 자리에 꾸준한 기쁨과 만족감, 그리고 이따금씩의 짜증이 들어앉았고, 그건 아주 행복한 변화 같아 보였다. 그녀의 인생에서 이보다 더 기쁘고 들떴던 순간이 있기는 했겠지만, 이보다 더 꾸준하고 한결같이 좋았던 시기는 없었다.
간혹 그녀는 사라져 버린 강렬함이 그리웠다. 그리운 건 그들사이 로맨스가 시작되었을 때의 강렬함뿐만이 아니었다. 둘의 우정이 시작되던 그 초창기의 강렬함이 사무치게 그리웠던 것이다.
밤 늦도록 열 장이 넘는 편지를 쓰던 그 시절. 정신 나간 열정의 편지엔 지루한 감상이 흘러넘쳤지. 마음을 살짝 감출 줄도 몰랐고,느낌표랑 밑줄을 남발했었지. 잠자리에들기 전 한시간씩 통화를 하고도 모자라 한동안은 날마다 엽서를 썼었지.
달스턴의 그 아파트에서는 밤새 음악을 들으며 얘기를 나누다 해뜨는 걸 보느라 잠시 쉬곤 했어. 덱스터의 부모님 댁에서 새해를 맞았을 때는 그 차가운 강물에 뛰어들어 같이 수영을 했고. 아, 차이나타운의 비밀 바에서 압생트를 마시던 그날 오후는...
이 모든 순간들과 더 많은 얘기들을 노트와 편지에, 사진 뭉치속에, 끝도 없이 많은 그 사진들 속에 차곡차곡 기록했었지. 1990년대 초쯤이었을 거다. 둘은 길거리의 스티커 사진 부스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기어이 그 좁은 박스 안으로 두 몸을 밀어 넣었던 건, 언제든지 언제까지나 둘이 같이 있는 게 서로에게 너무나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그녀는 누군가를 사랑했고, 그 보답으로 그녀도 사랑받고 있음을 아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따금씩 파티에서 사람들이 그녀와 남편이 어떻게 만났나를 물으면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우린 함께 자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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