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종기/
꽃이 피는 이유를 전에는 몰랐다.
꽃이 필 적마다 꽃나무 전체가 작게 떠는 것도 몰랐다.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누가 물어보면 어쩔까.
꽃이 지는 이유도 전에는 몰랐다.
꽃이 질 적마다 나무 주위에는 잠에서 깨어나는 물 젖은 바람 소리.
...꽃의 이유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이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어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이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도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잠할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우화의 강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하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 나무 하나 심어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릴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말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당신, 피곤해져도 잊지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바람의 말(마종기)

@마종기.(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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