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1일 화요일

크리스마스 때 혼자 해먹었던 인스턴트 로스트 비프.




애초에 로스트 비프라는 개념 자체가 커다란 덩어리 쇠고기를 천천히 구워내는 것이니까. 사실 프라이팬으로도 만들 수는 있어. 하지만 그럴 경우 보통 겉은 쉬이 타버리게 되니까 잘 하지 않을 뿐이지. 하여간 뭔가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내고 싶었는데 돈은 없고, 더구나 혼자 보내는 크리스마스가 우울할 때 후딱 만들어서 오랫동안 질겅질겅 씹었던 로스트 비프야. 

원래 쇠고기라는게 기름이 많고 잘 퍼진 부분이 등급수도 높고 가격도 비싸고 인기까지 많지만, 나는 애시당초 고기를 그닥 많이 먹지는 않는데다 기름을 싫어할 뿐더러 부드러운 것도 싫어해서. 일단 통상 장조림용으로 쓰는 가격도 싼 사태나 홍두깨 부분을 사왔어. 호주산이면 300g 내외에 몇 천원 안해. 이걸 꿀이랑 후추, 약간의 쯔유에 손가락으로 박박 문질러서 한 시간 내외로 재워놨다가 뜨겁게 달군 후라이팬에 겉면이 갈색이 될 때까지 화상을 입히고, 약불로 줄여서 즙이 살짝 배어나올까 말까 할 때까지 익히면 돼. 어차피 덩치가 두껍기 때문에 꽤 오래 익혀도 나중에 잘라놓으면 속은 분홍색이거든. 

이게 그냥 구이지 뭔 로스트 비프냐고 할지 모르겠는데, 로스트라는 말 자체가 굽는다는 뜻이니 상관 없어. 심지어는 맛도 똑같아. 사실 난 이걸 만들기 위해 오븐을 사는걸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아. 이 정도로도 맥주랑 곁들이면 충분히 맛있어. 행복해.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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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터셔 소스를 살짝 뿌려먹어도 괜찮고. 그냥 질겅질겅 씹어먹어도 괜찮고. 나 같은 경우에는 와사비를 살짝 얹어서 밥이랑 같이 먹곤 하는데 이러면 신기하게 생선 회 맛이 나. 아마 와사비가 주는 청량감 때문에 그런거겠지만... 실제 가격 따지면 몇 덩어리 만드는 데 3000원 내외나 할까 싶은데 미묘하게 고급스러운 기분이 들어서 만족하게 되는 짧은 성탄절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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