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0일 월요일

가만히 거닐다


Book story
'가만히 거닐다' 전소연
-교토. 오사카...일상과 여행 사이의 기록-













설거지를 하다 말고 딴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걸레에 묻어 나오는 먼지를 보다가 먼지 같은 생을 사는 사람을 문득 떠올려 잠시 걸레질을 멈추기도 했다. 늦은 밤 책을 읽다가 눈물을 뚝-하고 흘리는 내 모습에 낯설어 하기도 하고, 아침 8시쓰레기 봉투를 전봇대 아래 내다두는 일이 하루일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이기도 했다. 어떤 날은 우연히 들어간 카페의 커피향이 감동을 주기도 했다. 일상적인 여행의 매력은 이런 것이다.
...
여행을 하다가 정말 마음에 드는 곳에서는 한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면 한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이번 교토 여행에서는 의도적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건드렸고 덕분에 나는 일상적인 여행의 매력에 매료되었다.






설탕 한 스푼
휘휘-



설탕을 너무 많이 넣어 커피를 달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사람은 몽상가이거나 시인이다. 나는 몽상가의 커피에 설탕 두 스푼을 넣고 휘휘- 저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휘휘 저어 알맞게 달아진 커피를 티스푼으로 맛보는 일은 몽상가가 꾸는 꿈의 예고편을 보는 일이었다. 그 달달한 행위는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취미이고 섬세한 애정 표현이었다. 나는 커피에 설탕을 넣지 않고 마시지만 당신과 마시는 커피는 늘 달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서른 살 무렵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나는 마치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인 듯 자연스럽게 그를 앓게 되었다. 마음은 점점 진해졌고 그도 나를 앓았으면 하고 욕심을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시간이 필요했고 나는 그 시간만큼 기다림이라는 생의 지독을 견뎌야 했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었기에 더욱 지독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나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어디서든 네 자신을 잃지 않으면 돼, 우린 겨우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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