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1일 화요일

외국에서 맞았던 새해 첫날 떡국.



이걸 お雑煮, 오조-니라고 하는데 일본식 떡국이야. 지역마다 국물은 다르지만 내가 만들때는 전날 회로 먹고 남았던 방어 서더리에 왜간장과 미린을 부어서 만든 맑은 시루에 끓여보았어. 사실 일본의 정월요리 하면 오세치가 유명하고 또한 많이들 먹지만 아무래도 따뜻한 음식을 먹고싶기도 했고 뭣보다 오세치처럼 왕창 만들어봤자 자취생 입장에 얼마나 먹겠어...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하여 간단히 끓여본 오조니였는데 떡은 죄다 가라앉고 취향껏 왕창 넣은 카마보코랑 치쿠와만 떠서 무슨 어묵탕처럼 보이기도 해. 

그래도 막상 먹어봤을때는 꽤 나쁘지 않았어. 일본떡은 멥쌀이 아니라 찹쌀로 만들어서 좀 과하게 늘어지는 편인데 국물과 같이 뜨거울 때 들이키면 나름 떡국같은 기분도 들고 괜찮아. 다만 찰기가 과도한 찹쌀떡 특성상 제대로 저작하지 않고 삼켰다가 목구멍에 들러붙거나 기도에 붙어서 질식할 위험이 있으니 주의. 실제로 정초 일본에서는 주로 저작능력이 떨어지는 노인들이 떡국먹다 말고 세상 하직하시는[...] 일이 많다고 해. 아닌 게 아니라 연휴기간이던 3일까지, 평소 조용하던 카고시마 시내에서 종일 앰뷸런스가 윙윙 돌아다녔으니까 좀 마음이 심란했어. 

이런 점에서는 단단하고 쫄깃한 한국 떡국이 더 나을지도 몰라 ㅠㅠ... 먹다 죽을 일은 없잖아. 


정월이 되기 전후로 일본 상점가나 양품점 등에는 꼭 이런 걸 갖다놓곤 하는데, 이걸 鏡餅 카가미모치、 거울떡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야. 이 시기 전후해서 신사의 제단이라던가도 꼭 저렇게 떡이 놓여있더라고. 나도 별 이유없이 크리스마스 트리 감각으로 백엔샵에서 사다가 거창하게 갖다놓기는 했는데 원래 이유는 종교적인거라니까 떨떠름할 따름.... 먹는걸로 장난치는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물론 설날이 되자마자 죄다 뜯어서 스태프들끼리 떡국으로 끓여먹어버렸어☆ 

밑에 새전함은 장난으로 저금통을 갖다논건데 친구들 죄다 히죽히죽 웃기만 하고 동전을 넣거나 하지 않더라. 흔들어도 소리가 나지 않으니 마치 모 동인게임의 환상향에 사는 무녀네 신사 새전함을 보는 듯 하여 안쓰러운 기분이 들었어[...] 


떡국 먹기 전에 운동삼아, 일찍 일어나서 새해 첫 해를 보러갔었는데 문제는 보러갔던 사쿠라지마 해변가가 구름이 잔뜩 끼어서 일출시간을 훨씬 넘겼어도 해가 전혀 보이지 않았어... Orz 해변에는 나와 같이 보러갔던 질럿이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새해 첫 해를 보기 위해 모여있었는데 이 사람들 죄다 단체로 새해 첫 해를 못 봤어;;; 

사쿠라지마 화산을 배경으로 피어나는 붉은 아침노을은 구름에 묻혀서 보이지 않고, 많이 걷기도 했고 배도 고프므로 그만 발걸음을 돌렸어. 하기야 뭐 새해 첫 날 해라고 해도 꼭 그날 봐야 되는것만이 아닐 뿐더러 음력으로는 첫 해도 아니잖아 - 하는 식으로 여우의 신포도 식 궁상을 떨며 기숙사 건물로 들어가려는 그 때였어. 구름 사이로 찰나에 가깝게 아침노을이 보였어. 비록 사쿠라지마를 배경으로 뜬 해는 아닐망정 그래도 새해 첫 날의 시모아라타를 밝히기에는 충분하게 해가 밝아왔어. 

2013년 뱀의 해, 과연 그랬으면 좋겠다. 길~게 행복했으면 좋겠구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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